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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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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참을 수 없는’ 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물에 젖은 종이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때로는 햇살에 마르기도 하지만 쪼그라들어 그 흔적을 기어코 남기고 마는… 삶이란 그런 거라고 여겨왔다. 인간의 내재된 욕망과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갈수록 삶의 무게는 더해질 것이고, 너절하게 해어져 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의심치 않으면서. 종국에 토마시와 테레자가 트럭에 깔려 죽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결국 인간이란 애초부터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들의 종말 역시 삶의 무게에 굴복당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는지.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그런데 사비나는 어떠한가. 그녀의 삶은 외롭지만 더없이 가볍다. 타인의 시선에서 철저하게 등 돌린 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언제나 자신의 은밀하고도 내밀한 삶을 스스로가 지켜나가는 것에 기본을 둔다. 그것만이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고, 진실한 삶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공허를 느끼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면 그 어떤 배반의 구실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자 하는 토마시와의 관계에서도 어떠한 구속 없이 에로틱한 우정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망각하기 쉬운 삶의 가벼운 면모를 되살린다. 

 

그에 반해 테레자는 토마시 곁에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토마시를 비난하며 늘상 의심의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또한 토마시의 다른 여인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며 갈수록 삶의 무게를 더해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바람대로 자신 곁에 머물게 된 늙은 토마시를 비로소 인식하며 느끼는 그녀의 심리다. 마치 한 마리의 토끼처럼 연약해진 그를 바라보며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슬픔과 '우리가 함께 있다'는 행복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 다시 말해 마침내 다다른 슬픈 행복의 지점에서 만난 하나뿐인 자신과 하나뿐인 토마시의 존재, 그리고 이들의 하나뿐인 삶은 아무리 견주어봐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p.9

 

 

 

결국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피력하고자 했던 인간 존재와 그 삶이란 무엇인가. 니체가 주장한 영원한 회기의 영원성이 무거움이라면, 오직 한번인 인간 삶의 일회성은 가벼움이다. 그렇다면 양자 중 어느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끔찍한 것인지 혹은 긍정적인 것이고 부정적인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직 분명한 한 가지는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 -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p.13)'는 것이고, 여기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사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주제의 특성 상 매끄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구성적인 측면 역시 혼재된 관점이나 반복 서술 등으로 인해 다소 난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 존재의 본질과 한계를 적절하게 풀어내기 위한 것임을 상기한다면,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읽을 수밖에.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p.35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8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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