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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채식주의자 | 한강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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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세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하나의 소재를 공유하여 쓰인 연작이면서도, 각기 화자를 달리하여 서술하고 있기에 독립적인 한 편으로도 손색이 없다.

 

 

 

# 01. 「채식주의자

 

영혜의 남편이 화자로 등장한다. 모든 면에서 무난했던 아내가 불현듯 꿈을 꾼 이후로 냉장고 안의 모든 고기들을 내다 버린다. '나'는 자신의 식사에 계란 프라이조차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처가 식구들에게 아내의 행동을 알린다. 얼마 뒤, 언니 인혜의 집들이 자리에서 영혜는 가족들로부터 고기를 먹을 것을 강요받는다. 이에 영혜는 과도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으로 갖다 댄다. 

 

 

# 02.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이자, 언니 인혜의 남편이 화자로 등장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나'는 이년 전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 이후,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로부터 동생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몽고반점 이야기를 듣고 구체적인 작업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는 망설임 끝에 이혼 후 혼자 지내는 처제 영혜를 찾아가 아내에게는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하며 자신의 비디오 작업에 모델이 돼 줄 것을 부탁하고, 영혜는 이에 응한다. '나'는 벗은 영혜의 몸에 꽃을 그려 넣은 뒤 한 차례 비디오 작업을 마치지만, 몸에 꽃을 그린 남녀가 교합하는 2차 작업을 위해 후배 J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의 무리한 요구에 견디지 못한 후배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결국 '나'는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넣어 비디오 작업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 광경을 아내 인혜에게 목격당한다.

 

 

# 03.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 인혜가 화자로 등장한다. 동생 영혜와의 사건 이후 사라진 남편을 대신해서 홀로 아들 지우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간다.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 영혜를 들여다 보는 일도 그녀의 몫이다. 한 달에 한 번쯤 드나들던 것을 영혜가 실종됐던 사건을 계기로 매주 방문하게 되는데, 정작 영혜는 링거조차 거부하며 나날이 나뭇가지처럼 말라간다. 영혜는 물과 햇빛만 있으면 된다면서 자신은 곧 말도 생각도 잊은 채 나무가 될 거라고 중대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 말한다. 인혜는 그런 영혜를 어르고 달래기도, 때로는 윽박지르기도 해보나 소용이 없다. 의료진의 마지막 시도마저 거세게 저항하는 영혜의 모습에 담당의는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고 인혜는 받아들인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p.43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순으로 이어지는 이 3편의 연작소설에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영혜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첫번째인 「채식주의자」에선 채식 외에는 일절 입 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고기를 먹으라는 가족들의 성화에 손목을 긋는, 말하자면 이 연작소설의 발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특히나 소설 중간중간에 기울임체로 삽입된 영혜의 목소리는 그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속내를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기에 다소 그 묘사가 섬뜩해 불편하면서도 잠시 숨을 고르며 귀 기울이게 만든다. 

 

두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로 시선을 옮기면서, 이야기의 영역이 확장된다. 우연히 알게 된 영혜 엉덩이의 몽고반점이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작업에 영혜가 모델이 되는 것을 골조로 한다. 그 작업을 통해 그는 한동안 별 성과 없던 예술가적 욕망을 실현시키지만, 아내 인혜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만다. 이야기의 본질에서 조금은 비켜간 여담이지만,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보류다. 세간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은밀하고도 파격적인 작업을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수긍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쉽게 가시지 않기에.

 

세번째 「나무 불꽃」은 남편과 동생의 부정한 모습을 목격한 인혜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사라진 남편과 등 돌린 가족들을 대신해 삶의 무게를 한껏 짊어진 그녀의 원망과 자책, 절규의 이야기다. 그녀의 조근조근 그러나 절절한 심경 고백이 알알이 들어와 박히듯 너무나도 아프고 선명해서 문장 한 줄 한 줄 곱씹을 수밖에 없었기도 했고.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 p.221 「나무 불꽃」

 

 

 

시작은 한 여인의 채식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는 『채식주의자』. 그 욕망이 변주되는 지점의 절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길.

 

 

 

 

 

채식주의자 - 8점
한강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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