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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남한산성 | 김훈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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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인조 14년인 병자년(1636) 12월 초, 청의 칸(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은 직접 대군을 몰고 조선을 침략한다. 이에 조선 왕은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청군에 포위당한 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다음 해인 1637년 1월 30일 삼전도에서 항복한다. 병자호란의 이야기다.

 

장편소설 『남한산성』은 그 47일 간의 고요하지만 몹시 치열했던 병자년의 기록이다. 조정 신료들은 나라의 앞날을 두고 대립각을 세운다. 끝까지 청에 맞서야 한다는 척화신 김상헌과 화친 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 둘 사이에서 인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력하기만 하다. 그러는 동안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것은 고스란히 병사들과 백성들의 몫이다. 결국 인조는 걸어 잠궜던 성문을 열고 나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이로써 비로소 조선에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 p.236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환란의 시간은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끝없이 새로워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었다. 모든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 새벽의 시간은 더럽혀질 수 없고, 다가오는 그것들 앞에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이마를 땅에 대고 김상헌은 그 새로움을 경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p.237

 

 

 

치욕적인 역사의 한 부분을 다시금 되새긴다는 것, 여전히 그 뒷맛은 씁쓸하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남한산성』은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을 떠올리자면, 병자호란을 과거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돌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에 놓인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기에.

 

 

 

 

 

남한산성 - 6점
김훈 지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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