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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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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입양아 출신의 카밀라는 양부가 보내온 상자 안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가만히 사진 속 인물들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과 친모임을 알아채고,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를 알아내고자 한국의 진남으로 향한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할수록 그것을 막아서는 이들의 공세에 밀려, 자신의 친모가 그랬던 것처럼 파도에, 바다에 몸을 내맡긴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사진 속 열여덟 살 그 모습 그대로의 엄마를 만난다. 뻗은 손끝으로 엄마의 살갗을 매만지며, 그 생생한 감각 안에서 스스로가 다시 태어남을 느낀다. 그것은 진실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그녀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는 것인 동시에 앞으로 헤쳐나갈 나날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날 젊은 엄마 정지은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향한 간절함의 목소리와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바다에 던져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 p.88

 

나라는 존재, 내 인생. 엄마가 나를 낳아서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제 내가 엄마를 생각해서 엄마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만 했다. "자신이 꽤 용감하다고 생각하는군요"라던 신혜숙의 말이 떠올랐다. 죽은 엄마를 생각한다는 것, 그건 용감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p.102, 103

 

"저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울 뿐이죠."    - p.168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 p.177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 p.241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모두 결정적이다.    - p.251

 

 

 

내가 읽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 그로 인해 벌어진 간극을 메워나가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고 말하는 심연을, 그들은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날개 ― 비록 가질 수 없는 것일지라도 ― 가 존재하는 한, 어떻게든 가닿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것만이 오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이. 

 

그러므로 카밀라와 정지은이, 희재와 또다른 희재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는 것이 너와 나,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의 날개인 셈이다. 그것만이 심연을 건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들의 삶과 삶 속에 가려진 진실을 좇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런데 때때로 그 진실은 우리 앞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한다. 또 어떨 때는 그들이 믿는 진실을 사이에 두고, 그것을 캐내고자 하는 이와 지켜내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모두 각자의 사정을 안고서,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에. 이는 혼자가 아닌 타인과 부대끼며 사는 삶을 영위하는 이상, 안타깝게도 만부득이해 보인다.

 

어느새 이런저런 잡념이 모여, 애당초 완전한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는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완전한 거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므로……. 어쩌면 일생에 거쳐 각자가 믿는 진실을 타인에게, 혹은 세상에 알리고, 증명해 보이는 과정 그 자체를 두고 우리는 '삶을 산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된 삶을 꿈꾸는 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이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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