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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원더보이 | 김연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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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기다려, 지금 너에게 달려갈게

 

 

 

# 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요?

 

 

10000000000000000000000개의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0들이 나열된 별의 구체적 수를 마주 하자니, 내가 바라보는 하늘에선 도대체 그 많은 별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궁금해지는 거다.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 볼 적이 있는데, 환한 달 옆으로 작게 반짝이는 별 하나만 발견해도 그날 밤은 운이 좋다 여길 정도니, 새삼 그 수가 놀라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딴 세계 얘기처럼.

 

어찌 됐든 그저 컴컴하기만 한 밤을 마주하는 일은 매우 슬펐다. 그러므로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두 제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원더보이』가 컴컴했던 이유를 알려줬다. '유레카'를 외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p.341

 

 

 

『원더보이』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한 소년의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 자신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은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원더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다. 녀석을 원더보이로 만든 것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어른들의 필요에 의해서다. 매일같이 이름도 기괴한 재능개발연구소에서의 괴상한 실험들과 고문실에서 취조 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읽어야만 하는 임무는 어딘지 슬프면서도 우스꽝스럽지만, 원더보이가 사는 세상에선 더없이 긴한 임무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 고통받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다가, 불처럼 뜨거운 분노를 느끼고, 하지만 그 분노 역시 자신처럼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고 난 뒤 절망 속으로 깊이 빠졌다가, 내면의 밑바닥, 의식의 가장 아래쪽에서 어두운 감정들, 모멸감과 자기혐오와 수치심이 들끓는 것을 지켜보고 다시 그 감정들에 의해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파괴되는 광경을, 그리하여 가수가 자신을 껍질이 검고 딱딱한 갑각류의 한 종류로, 털이 박힌 다리로 어둠을 찾아 기어 다니는 벌레로 상상하는 광경을, 그러다가 그 끔찍한 벌레가 누군가의 구두에 짓밟혀 허연 진물을 뿜어내면서 버둥버둥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p.100) ― 강압적이고 신물 나는 세계 한가운데 자신이 서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야만 했다. 더 이상 원더보이가 아닌, '정훈'이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이전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정훈은 그제야 비로소 '평범해지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나를 외롭고 가난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p.217)' 고 돌이켜 생각한다.

 

나는 이 고백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초능력같은 것은 필요 없다. 부디 아름다운 세상에서 ― 비록 외롭고 가난하더라도,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므로 ―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길……, 진심으로 그렇게 빌어주고 싶다. 

 

 

 

 

원더보이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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