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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 이미경 | 남해의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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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즐거운 기억이 구멍가게에 숨어 있다!

 

 

 

여느 때처럼 인터넷서점을 기웃대다가, 이미경 작가가 그리고 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신간이었는데, 그녀의 정교하고 세밀한 펜화를 보는 순간 매료됐다. 더군다나 구멍가게라니! 20여 년간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스러져가는 점방을 그려왔다고 했다. 그 시간들은 따뜻하고 정겨웠던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의 힘이고, 동시에 화폭에서 나마 지켜나가고 싶은 희망의 손놀림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맞닿아 자연스레 마음이 동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기억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구멍가게로 가는 길,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소박하고 정겨운 행복이 있다."

 

 

 

동 세대는 아니지만, 내 기억 한구석에도 그런 장소가 존재한다. 그 시절을 한층 즐겁고 풍요롭게 했던 따뜻한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 말이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놀다가 호주머니에 든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드나들었던 붉은 기와를 얹은 작은 슈퍼였다. 뻔질나게 문턱을 넘으며 군것질거리를 고르던 그 시간은 늘 설레기만 했다. 두부 한 모, 대파 한 단 사 오라는 심부름이라도 하는 날에는 잔돈으로 판박이 덴버껌 하나라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낙이었다. 그 옆에 있던 정육점도 생각난다. 그곳을 나와 또래 친구들은 통닭집으로 불렀다. 머리 희끗한 주인 아저씨가 고기 손질을 하다가도 주문이 들어오면 가게 한 켠의 기름통 앞에서 닭을 튀기고 계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정육점을 머릿속에서 그리자면, 그 시절의 닭 튀겨지던 기름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내 귀와 코끝을 간질인다. 어쩌다 튀긴 닭을 포장해 오라는 심부름을 하는 날에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그때도 페리카나, 처갓집 같은 체인 집 치킨을 배달시켜 먹기도 했지만, 갓 튀겨 노릇한 통닭을 기름종이에 싸서 누런 종이가방에 담아주던 그 집 통닭에 비할 것이 못됐다. 유년시절의 발걸음이 학교 뒷문을 향한다. 그곳에 있던 문방구는 정문에 있던 문방구들과는 달리, 온갖 불량식품의 온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동전을 건네면 거뭇해진 국자에 크게 설탕 한 스푼 담아 건네주던 달고나가 생각난다. 연탄불을 둘러싸고 삼삼오오 모여 설탕을 녹이던 그 시절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외갓집에 가야만 탈 수 있었던 구멍가게 앞 방방이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단순했고, 해사했으며, 소박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은 구멍가게서 피어났다. 정겨웠던 그때를 생각하자니, 모르는 새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불현듯 새탭을 열고 검색해보니, 그 시절의 슈퍼가 지금도 있다! 아마도 주인은 바뀌었겠지만, 같은 이름으로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반갑고 다행스럽던지. 그 동네가 들어선 이래로 지금껏 있었으니, 삼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아쉽게도 그 시절의 통닭집과 학교 뒷문 문방구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도 마음속에 통닭집과 문방구는 늘 그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 도당상회, 180x97cm, 2014 

 

[이미지 출처 - 이미경의 그림이야기  http://www.leemk.com/2014kiaf/dodanga.jpg]

 

 

 

추억이란 그런 것 같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 따스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우친다. 이미경 작가가 더없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 둘 없어져가는 구멍가게들을 떠올리자니 못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지만, 작가의 화폭 안에서 새로운 구멍가게가 그려지고, 우리 기억 속에서 구멍가게가 건재하는 한 그 모든 반짝이던 것들이 영영 사라지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를 더 강렬히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p.138, 139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 10점
이미경 지음/남해의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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