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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꾿빠이, 이상 | 김연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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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다만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매해진다는 말입니다."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이 재판되었다는 소식 이후, 책장에 꽂아 놓은 것이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다 최근 웹서핑 중 우연히 이상의 부인이기도 했지만, 김환기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이었다가 김향안이 된 한 여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환기 역시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 둘 사이에 이런 연결고리가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간 미뤄뒀던 『꾿빠이, 이상』을 읽게 됐다.

 

이상의 죽음 직후 만들어졌다는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엇갈린 증언을 이야기 한 「데드마스크」, 철저하게 이상을 모방하고자 했던 '나'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영원히 이상으로 살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삶의 진위를 묻는 「잃어버린 꽃」, 이상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여태껏 발표된 적 없는 「오감도 시 제16호」 원고를 발견하고, 그것의 진위를 밝히고자 하는 「새」. 이 세 가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이상과 그의 작품을 둘러싼 의문들을 캐고자 하는데 몰두한다. 어느 것이 거짓이고 참인지, 가짜이고 진짜인지를 끝없이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가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진위의 여부라는 것이 과연 진실에 가닿는 유일한 방도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의구심을 품어야 할 대상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소설 『꾿빠이, 이상』은 이상과 그의 문학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고증 없이는 불가한 글이랄 수 있다. 여기에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미스터리 구조는 한층 이상의 존재를 그가 남긴 『날개』만큼이나 모호하게, 그래서 오히려 신비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마치 미궁처럼.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 p.97

 

 

 

더보기

 

+ 이상의 『날개』를 처음 읽었던 무렵이 떠오른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몹시도 난해했지만, 그것을 읽으면서 기이하다 여겼었다. 소설 말미에 규율과 억압 속에 놓여있던 '나'가 옥상으로 달려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간절하게 비는 장면을 읽으면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마음이 동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걸 읽고는 곧바로 스스로에게 거는 주술로 써먹었던 일도. 이후로도 한동안 툭하면 웅얼댔다. 그땐 다른 데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그저 교실 밖이면 어디든 좋겠다 싶은 궁리만 하던 때여서, 확실히 날개가 필요하긴 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를 꿈꾸며 그걸 그리도 중얼댔던 건지, 그 시절의 내게 묻고 싶어 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좇던 이상을 둘러싼 진실의 진위 여부처럼 나 역시도 붙들려 있기에 놓여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에 탈출하는 것만이 자유라고 막연히 꿈꿨던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조차 생각 못하게 그저 어렸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꾿빠이, 이상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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