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17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 예담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츠바키 문구점의 가슴 뭉클한 기적

 

 

 

츠바키 문구점은 별도의 대필 간판은 걸어두고 있지 않지만 집안 대대로 편지 쓰는 일을 해왔다. 아메미야 하토코는 선대가 돌아가시고 일을 돕던 ― 선대와 일란성 쌍둥이인 ― 스시코 아주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향 가마쿠라로 돌아와 츠바키 문구점에서 편지 대필하는 가업을 이어간다.

 

대필을 의뢰하는 다양한 이들 만큼이나 그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조문을 위한 편지나 생일 축하 카드, 부탁을 거절하는 답장 외에도 단순히 안부를 묻고자 하는 평범한 편지까지. 하토코는 선대가 그래 왔듯,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의 특성과 상황, 편지의 목적 등 여러 면을 심사숙고하여 그에 알맞은 필기구, 편지지 재질과 크기를 정한다. 그리고 잉크색과 봉투, 우표도 신중하게 고른다. 그러고는 온전하게 의뢰인이 되어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적어 내린다. 대필 후에는 바로 봉투에 넣어 봉하지 않고 하룻밤 불단 위에 세워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한 번 더 확인 후 조심스레 봉인한다. 이 정성스러운 과정을 살펴보자니, 마음속 한 켠에 있던 대필에 대한 선입견이 말끔히 씻겼다.

 

소설 초반에 학창시절의 하토코가 선대를 향해 "이런 건 사기야! 전부 엉터리잖아. 거짓말투성이라고."  소리치며 대드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선대는 찬찬히 대필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하토코는 저항했던 것도 잠시 이내 마음속으로 수긍한다. 선대가 '열심히 무언가 소중한 것을 전하고자 한다는 것'(p.54) 이 그녀의 마음속에 와닿았던 이유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펴기 전까진 대필로 쓰인 편지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담길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터라 이 지점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토코가 그랬던 것처럼.

 

 

 

"사기라고 생각되면 사기라고 생각해. 하지만 편지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사람이 있어. 대필가는 옛날부터 가게무샤
(적을 속이기 위해 대장으로 가장시킨 무사)
 
같은 것이어서 절대 양지는 보지 않아. 그렇지만 누군가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감사를 받는 일이야.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과자 선물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럴 때 대부분은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가게의 과자를 들고 가지? 개중에는 과자 만들기가 특기여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게에서 산 과자에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 p.53, 54

 

 

 


 

 

 

 
 

#. 가마쿠라(鎌倉)

 

옅게 깔린 구름처럼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가 『츠바키 문구점』 곳곳에도 퍼져 있다. 여기에 가마쿠라(鎌倉) 배경은 단연 그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킨다. 쇼난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즈넉한 사찰과 신사, 복닥복닥 상점가의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가마쿠라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곳, 그 어딘가에 있을 츠바키 문구점을 상상해 본다. 

 

그랬더니 역시나 옮긴이처럼 당장이라도 짐 싸들고 가마쿠라로 향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물론 간다고 해도 츠바키 문구점은 찾을 수 없겠지만, 그 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가마쿠라에 실제로 존재한다. 가마쿠라궁을 비롯해 쓰우가오카하치만궁, 주후쿠사, 고메이사…, 이외에도 쓰루야와 도요시야마, 베르펠트, 사한, 캐러웨이 등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세 차례의 가마쿠라 방문에서 몇몇 곳은 가본 적이 있다. 그 안에서도 도요시마야(豊島屋)는 메이지 27년(1894년) 시작한 이래 가마쿠라를 대표하는 과자점이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이 비둘기(일본어로 하토[鳩]) 모양의 하토사브레(鳩サブレー)인데,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 하토코(鳩子)인데다가 별칭 역시 포포(비둘기 울음소리)여서 문득 떠올랐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그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고는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었다. 

 

혹 가마쿠라에 다시 가게 된다면, 호젓하게 하토코의 발자취를 따라 거니는 여행도 즐거울 것 같다. 특히나 하토코가 바바라 부인과 자전거를 타고 고마치 거리를 상쾌하게 달리던 그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서 선하다. 그녀들을 따라 가든 하우스 테라스에서 맛있는 식사 한 끼하는 그날이 어서 왔으면.

 

 

 

 

 

 

#. 손편지

 

'옮긴이의 글'을 읽다 보면, 대학생인 딸에게 손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보내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한 차례도 없다는 얘기를 적고 있다. 문득 내가 나이를 먹었나, 싶은 씁쓸함이 밀려왔지만 이내 손편지의 따스함을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데에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지금도 내 방 붙박이장 한 켠에는 손편지들이 가득 담긴 나무 상자가 하나 있다. 손때 묻은 그 시절의 추억이 그 안에, 편지로 보관되어 있는 셈이다. 한 번 씩 꺼내어 볼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푸근한 느낌이다. 그 시절 내가 보냈던 수많은 편지들 역시 이 편지들처럼 상대방의 울타리 안에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을까, 가끔은 떠올리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유독 편지 쓰는 걸 좋아했다.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고르고 카드를 고르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표를 붙여 우체통으로 향하는 길이 설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멀리 이사 간 친구나 친지를 상대로 안부 편지나 성탄 카드를 주고받았었다. 그리고 방학 때는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고, 은근하게 답장을 기다리며 우편함 앞을 서성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친구들 사이에서 저희들끼리만 아는 상형문자로 적은 엽서를 주고받은 적도 있었다. 오직 우리들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대화였기에 한동안 활발하게 주고받았었는데, 그 외계어를 모조리 까먹은 지금은 그때의 엽서가 있어도 읽을 수 없어 난감하다. 심지어는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일도 편지의 힘을 빌리던 시기였다. 한 번은 제법 좋아하던 아이로부터 고백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걸 한동안 고이 간직하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두고 가게 된 내 방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온 일은 지금도 이따금씩 떠올리곤 한다. 받은 편지를 소중히 대하고 하다못해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들 마저도 보관하고 있지만, 그 편지만은 내 손으로 두고 왔었다. 그때의 어린 나는 이사 짐을 정리하며 왜 그 편지를 두고 왔어야만 했던 걸까. …이외에도 손편지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메일 주소를 갖게 되면서 손편지를 보내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그땐 이메일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해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역시나 손편지에는 그것만이 가진 매력이 분명하게 있었음을 어른이 되어, 더 이상 편지 쓸 일이 없어진 뒤에야 실감한다. 손편지에는 보내는 이의 마음과 정성이 거기에 온기로 스며들어 받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임을. 오늘 츠바키 문구점이 새삼 그 마법을 그립게 만든다.

 

 

 

 

 

츠바키 문구점 - 10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예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