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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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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부조리와 모순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반전反戰소설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학살로 알려진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다룬 여느 반전(反戰)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것이 바라본 전쟁의 한가운데는 슬픔과 고통 대신 냉소와 풍자가 자리한다.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은 ― 해설에 따르면 무려 백 여섯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 "뭐 그런 거지(So it goes)", 이 한 마디로 집약된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간 여행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그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p.82)'. 말하자면, 빌리의 무수한 시간 여행은 단순한 추체험일 뿐, 일어났던 일이나 지금 일어난 일 혹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꿀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전쟁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에서 목도한 폭격의 충격과 공포가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인생의 어떤 지점으로 향하든 결국 그날의 폭격으로 귀결되고 마는 아주 불행한 얘기. 그러므로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p.33)'이라고 고백한다.

 

어쩌면 끝없이 반복되는 빌리의 시간 여행이 그날의 충격과 공포로부터 놓여나기 위한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발버둥은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계속됐고, 결과적으로는 헛되었다. 그 갈망의 좌절이 보니것이 구축한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세계 안에서 은근하면서도 한층 강렬하게 전쟁의 모순을 상기시키는 인상이다. 일례로 전쟁 포로가 된 빌리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희희낙락하며 드레스덴으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해 마주한 드레스덴에 대해 그는 '스카이라인은 복잡하고 관능적이고 매혹적이고 비현실적(p.187)'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오즈(『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환상의 세계)다'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환상적이었던 첫인상은 폭격 이후,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p.221, 222)'로 갈무리된다. 이 담담한 폭격 후의 상황 묘사는 폭격 이전의 모습과 대비되어 한층 전쟁의 상흔을 도드라지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뭐 그런 거지"는 절대 빠지지 않는 식이다. 그리하여 그 끝없는 냉소가 되려 진한 슬픔을 마주하게 한달까.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입니다.    - p.33

 

 

 

 

 

제5도살장 (반양장) - 10점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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