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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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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젊은 날의 사랑은 지나갔지만 남아 있는 날들에도 희망은 있다

 

 

 

한평생을 달링턴 홀의 집사로서 지내온 스티븐스는 위대한 주인이라고 믿었던 달링턴 경이 죽고, 지금은 새로운 주인인 미국인 갑부 패러데이 어르신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던 1956년 7월의 어느 날, 그는 주인 어르신의 제안에 따라 서부 지방으로 생애 첫 여행을 떠난다. 그 6일 간, 영국의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한다. 오직 위대한 집사가 되고자 했던 일념은 아버지의 임종을 외면하게 했고 마음에 두었던 켄턴 양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지우게 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자신의 삶에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때 그 순간 내가 이런 선택 혹은 이런 행동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하며, 인생의 '전환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그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전환점이었을지도 모를 순간을 무지몽매하게 날려 버린다는 것, 그것을 한참 뒤에서야 알아차리고 깊은 회한에 잠긴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애애하다. 이에 대해 훗날의 스티븐스는 말한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p.221)'었다고. 그렇다면 인간에게 그것은 어쩔 도리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일까. 그러나 스티븐스는 적어도 그 회오 속에서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켄턴 양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지금껏 살아온 자신이었다면 마음속에 묻고 지나쳤을 물음을 용기 내어 건넨 것이다. 이로써 ― 비록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지금 현재의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남아 있는 날들의 행복을 도모할 수 있는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결국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내지 후회의 이야기로 점철된다. 지금과는 다른,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를 삶에 대한 상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스티븐스의 깨달음은 오랜 시간, 우리 마음 안에서 뭉근하게 머무를 것이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봐요, 형씨. (…) 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 그래요,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 p.299, 300 

 

 

 

 

 

남아 있는 나날 - 10점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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