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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맛 읽어주는 여자 | 모리시타 노리코 |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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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음식에 담긴 삶의 서사와 시대의 풍경을 음미하다

 

 

저자는 오랜 미식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음식 이야기를 전한다. 유년 시절 맛보았던 음식에 얽힌 추억을 바탕으로, 그 음식이 어떤 시대적 배경 안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각기 음식들이 걸어온 시간들을 한 개인의 추억과 더불어 되짚어 보는 식이다. 가령 외부로부터 들여온 식재료를 자신들만의 조리법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시킨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고로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의 씁쓸한 기억 때문에 기피하게 된 찹쌀 주먹밥과 팜피 오렌지에 얽힌 이야기,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 가지 요리와 '오하기'라는 이름의 팥떡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물론 일본인 저자가 그 나라를 무대로 풀어놓은 글이기에 우리의 사정과는 상이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웃나라로서 오랜 세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덕에 이질감이 그리 크진 않다. 더욱이 일본 여행이 흔해진 시대인지라, 일식에 대한 이해와 관심과 맞물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음식에는 언제나 추억이라고 하는 양념이 배어 있다’는 문장을 마주하며, 문득 유년 시절 이따금씩 사 먹었던 번데기를 떠올렸다. 당시 살던 곳 가까이에 이름난 산이 있어서 주말이면 곧잘 오르곤 했는데, 그 입구에는 늘 번데기와 다슬기를 파는 아주머니가 자리하고 계셨다. 그러면 엄마는 늘 뭐 먹을래, 묻고는 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 손을 대고 입으로 쏙쏙 힘주어 빼먹어야 하는 다슬기 대신, 먹기 한결 수월한 - 번데기를 사 주시곤 했다. 동전을 건네받은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 나는 번데기를 한 국자 푹 떠서 종이컵에 담아 주셨는데, 이번에도 다슬기를 맛보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잠시 풀이 죽어 있다가도 번데기가 담긴 종이컵을 손에 쥐면, 그리고 그걸 이쑤시개로 콕 찍어 입 안에 넣으면, 아까의 실망은 저만치 뒤로하고 그 짭조름함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신기하게도 매번 그랬다. 어금니로 오물오물 살짝 짓이기면 톡 하고 터지던 재미가 어찌나 쏠쏠했는지.

 

그런 추억의 음식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먹기 전의 작은 설렘과 기대감, 그날의 기분 좋게 달아올랐던 기분이, 그 공기가 음식에 고스란히 스민 채, 입 속으로 향하던 황홀했던 경험. 그 행복의 기억이 때때로 허기지고 마는 우리의 마음을 기름지게 한다고 믿는다. 『맛 읽어주는 여자』를 읽는 내내 입 안 가득 고인 군침을 삼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음식의 맛이란, 마음을 채우는 무언가가 더해져야만 비로소 온전하게 저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무언가 먹으려는 순간 묘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어떤 음식의 맛과 향을 접했을 때, 예전에 어디에선가 느꼈던 즐거움이나 애틋함이 온몸에서 솟아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육체의 기억과 마주했을 때 나는 ‘생명체’로서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진다.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분명 사람은 그 날 그때의 기분이나 인상을 함께 먹게 된다. 그것은 음식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 몸속 깊은 곳에 축적된다. 그리고 어느 날 같은 맛 혹은 비슷한 맛과 만나면, 책 사이에 끼워둔 책갈피 끈을 잡아당겨 페이지를 폈을 때처럼 맛의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 p.239

 

 

 

 

 

맛 읽어주는 여자 - 10점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지희정 옮김/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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