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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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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 | 시바사키 도모카 | 은행나무 마음속에 저마다의 풍경을 끌어안은 채 우리는 지금 이 거리에 살고 있다. 철거를 앞둔 오래된 연립에 사는 다로는 우연히 같은 건물 2층에 사는 니시가 몸을 내밀어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니시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다로는 그녀의 시선이 근처 물빛 집에 있음을 알아채고는 남의 집을 염탐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 니시에게서 그 까닭을 전해 듣고, 다로 역시 고교와 대학 시절 본 적이 있는 사진집 『봄의 정원』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물빛 집에 대한 니시의 관심은 서서히 다로에게까지 옮겨간다. "『봄의 정원』은 기억과 만남의 이야기입니다. 낯익은 듯한 풍경 속에서, 그리운 사람 혹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거나 먼 과거의..
남한산성 | 김훈 | 학고재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인조 14년인 병자년(1636) 12월 초, 청의 칸(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은 직접 대군을 몰고 조선을 침략한다. 이에 조선 왕은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청군에 포위당한 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다음 해인 1637년 1월 30일 삼전도에서 항복한다. 병자호란의 이야기다. 장편소설 『남한산성』은 그 47일 간의 고요하지만 몹시 치열했던 병자년의 기록이다. 조정 신료들은 나라의 앞날을 두고 대립각을 세운다. 끝까지 청에 맞서야 한다는 척화신 김상헌과 화친 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 둘 사이에서 인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
유년의 뜰 | 오정희 |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인 『유년의 뜰』. 1981년 출간 당시 작가는 후기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할 때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위안받는다. 나 역시 그렇다. 잠이 안 오는 밤, 나는 자주 생을 바쳐 훌륭한 작품을 남긴 이들을 생각하고 글에 대해 성실함이 생에 대한 그것이며 진실로 소중히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고 지키는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p.266)"라고. 지난 시간 정성스레 수놓아 완성한 글을 차례로 세상에 내놓으며, 마음 한 켠에 차곡히 쌓아뒀을 작가의 진심이 비로소 알알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로서 수십 번, 수백 번 고뇌하며 그간 어떤 마음으로 펜을 잡았을지, 조용히..
7년의 밤 | 정유정 | 은행나무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당신이라면 저주받은 생을 어떤 타구로 받아칠 것인가 7년의 밤. 책을 덮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주받은 생이라는 것이 과연 이들뿐이겠는가, 하는 생각. 세령호사건의 시작은 칠흑 같은 밤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은 한 남자, 최현수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이 행했던 그날 밤의 실수에 대해 통렬한 후회를 하며 고통스러워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애써 불안함을 잠재우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그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야만 하는 것, 바로 하나뿐인 아들 서원이 존재하는 이유다. 사건이 발생하고 칠년의 세월 속에서 그는 수없이 그날의 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을 포함한 세령호에서의 2주를 끝없이 복기한다. 그러..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이기호 | 마음산책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습니다. 단편 소설 보다도 더 짧은 길이의 소설 40 편이 실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편 수에 비례하게 소설 속 등장인물 역시 매우 다양하다. 직업, 연령은 물론이고 그들이 처한 상황 모두 제각기지만, 우리는 이들의 모습 안에서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내 이야기, 내 주변 이야기, 하다못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눈에 띄어 훑었던 기사에서 만난 이야기 혹은 흘려 들었던 라디오 뉴스에서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우리네 이야기인 이유일 것이다. 말하자면, 제자리걸음인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랄까. 그래서인지, 짧은 글이라는 것이 무색하게도 그 여운만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때론 웃음에, 때론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