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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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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여기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빙수 가게 요시모토 바나나가 보내는 눈부신 한여름의 풍경 마리와 하지메가 꾸려 가는 두 평 남짓의 조그만 빙수 가게. 에어컨도 없는 어둡고 비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단순히 얼음을 갈아 팔기 위한 장소만은 아니다. 그녀들의 꿈이 비로소 시작되고, 실현돼 가는 공간인 것이다. 마리는 지난 여름, 남쪽 섬 여행에서 들렀던 빙수 가게에서의 황홀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달콤 시원했던 빙수의 맛은 물론, 가게 뒤로 펼쳐진 망고스틴 가로수길과 그 끝에 자리한 바다를 포함한 모든 것을. 그래서 다니던 도쿄 단기 미술 대학을 졸업하자, 고향 니시이즈 - 마음이 늘 돌아가는 곳 - 의 바다가 보이는 솔숲 중간에 빙수 가게를 연다. 그 여름, 하지메는 오랜시간 의지하던 할머니를 떠나 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혜민 | 수오서재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 01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것들로부터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꽁꽁 싸매고 있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결코 대단한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약효만큼은 제대로인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가 절실했던 이유는 아닐는지. #. 02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는 순전히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스님의 따뜻한 응원을 발판 삼아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지점을 향해 다시 한번 힘을 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애써 감추거나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 챕터하우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가? "나는 폭발하고 침몰하고 분해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파괴가 나의 작품, 나의 창작물, 나의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슬픔, 절망, 고독, 분노, 증오, 허무, 죽음…. 에밀 시오랑(Emil M. Cioran)에게 생(生)의 비극은 외면이나 기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맞닥뜨려야만 하는 결연한 의지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이겨내야 할 대상 역시 아니다. 직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우리를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다. 산산이 부서짐을 자처하며 완성한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가 유의미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생의 비극 안에서 나약해지기 마련인 우리에게 절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언어를..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병들고 아픈 시대에 대한 혹독한 예감 ‘살아 있음’에 대한 이토록 치열한 존재 증명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은 내 청춘의 시기를 함께 해준 그야말로 인생 시집이라고 여길 정도로 특별한 시집이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고 있을 정도로 애지중지하고 있는데, 서점 한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그날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책꽂이에서 꺼내어 무작위로 펼쳐진 페이지에서 처음 읽었던 시는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었다. 오랜 궁리 끝에 일체의 불필요한 단어들은 제하고 오직 정제된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요샛말로 대단한 걸 크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시였다. '아 썅!'을 마음속으로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듯한 소화제 같은 시였달까.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 현대문학 의문의 죽음들은 '단순 사고'인가 '살인 사건'인가 8년 전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두 세계의 대결 이제 모든 일은 예측할 수 있다 황화수소로 인한 중독 사고가 두 달 남짓한 사이에 두 건이 발생한다. 나카오카 형사와 아오에 교수는 피해자의 신상과 사고 당시의 기후,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 등을 바탕으로 사고 발생의 단서를 찾고자 애를 쓴다. 애초에는 황화수소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 우연히 발생한 아주 불운한 사고로 판단한다. 그러나 사고 현장을 파헤칠수록 우연히 발생한 단순 사고로 결론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님을 절감하면서, 황화수소로 인한 중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고가 어쩌면 긴밀하게 연관된 살인 사건은 아닌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