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580)
잘 지내니 | 톤 텔레헨 | arte 사랑한다는 말 대신,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지내니? 혼자와 함께, 그사이 어딘가쯤 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인사 동물들은 저마다 사정을 안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외로움에 떨기도 하며, 때로는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바라며 적당한 거리를 원하는 한편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희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흡사 우리와 닮았다. 삶의 순간순간 마주하는 자신과 타인을 향한 감정들은 우리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에 대하여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된다. 톤 텔레헨의 『잘 지내니』는 그에 대하여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진심 어린 안부 인사를 건네는 일이라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는 것 같다. “잘 지내니?” 짧은 인..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 요시모토 바나나(글)∙수피 탕(그림) | 한겨레출판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처럼 포근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 에세이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 거듭된 과정 안에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단연코 사랑의 힘이었으리라. 요시모토 바나나가 글 쓰고 수피 탕이 그린 그림 안에서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날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고 밥을 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그때 자주 해주셨던 진한 된장국의 맛으로 남아 있다. 후일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도마 앞에 서면 그 시절 아빠가 알려주었던 무 써는 방법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빠를 추억한다. 한편 자신이 온 세상인 것처럼 꼭 붙어 있던 아이가 훌쩍 성장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대견해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릴..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 헤르만 헤세 | 뜨인돌 '어떻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헤르만 헤세의 홀로서기 인생론 비루한 삶에 대항하는 최상의 무기는 용기와 고집, 인내다. 용기는 자신을 강하게 해주고, 고집은 인생을 재미있게 해주며, 인내는 평안을 허락한다. - p.13 「용기, 고집, 인내」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에 엮인 편지와 일기, 시와 산문은 그 제목에서 짐작하듯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자면 단연 ‘자신의 감각’(p.27)이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 때로 거친 반발과 투쟁의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길 바랐고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
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 사노 요코 | 민음사 심각한 고민도 어느새 훌훌 털어 버리게 만드는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그림 에세이 시바견 잡종 강아지로 알고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커갈수록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를 지녔다면..? 이럴 때 반려인은 예상치 못한 외형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교감을 쌓으며 이미 한 가족이 된 마당에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외에도 사노 요코만의 솔직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새삼 그녀의 거침없고 명쾌한 이야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달까. 더욱이 정감 가는 그림이 더해져 보다 생생하게 요코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상당히 부당해 보이는 어떤 상황을 목도했을 때, 대개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눈감는다.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닌 이상, 어느 모로 보나 그 편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므로. 그럼에도 때때로 우리는 마주하곤 한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 내어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나는 그들 몇몇이 존재하기에 이 세계가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등장하는 빌 펄롱은 그 몇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물론 처음부터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에게는 아내 아일린과 그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딸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불안하지만 빛나던 시절 청춘, 예술 그리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문득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p.21)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말하자면 상실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제 안의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고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기도 했다. 또한 일순 벌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났음을 후일 자각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사라진 것들을 곱씹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상실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때때로 깊은 슬픔과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 일말의 후회와 자책, 아쉬움을 담고 있기는 했으나 —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희석됐다. 다만 그 가운데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애써 지난날의 무언가를 돌이켜 보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 문학과 지성사 삶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에 대한 서른네 편의 보석 같은 에세이 일상에 깃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여기 적힌 서른네 개의 소제목은 저자가 일상 안에서 마주한 작은 기쁨에 대한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하루 하나씩 두근대며 어드벤트 캘린더를 여는 마음으로 그 빛나는 순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른 아침에 크루아상을 사러 가고 완두콩 깍지를 까며, 첫 맥주의 한 모금을 마시면서와 같이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에도 보물을 발견하듯 기쁨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 어쩌면 삶 속 행복이란 그것을 느낄 준비가 된 존재에게만 허락된 신의 선물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깜깜한 방 안에서 신비로움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뒤섞인다. 모든 것이 가볍..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 남자의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우아하고 지적인 10년의 회고 형을 잃은 저자는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서 나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p.69)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 p.33, 34 「1장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