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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사는 게 뭐라고 &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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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죽음 철학

 

 

 

삶을 대하는 사노 요코(佐野洋子)의 의식과 행동에는 조금의 거침도 없다. 그저 살아가야 할 일상을 살아낼 뿐.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감수해야 할 것은 기꺼이, 털어낼 것은 미련 없이 내어 놓는 식이다. 사소한 질척거림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삶의 태도는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은 뒤에도 변함이 없다. 외려 직시하게 된 죽음 앞에서 한층 발랄해 보이기까지 하다. 죽음을 삶에서 외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써 바라보는 ― 정확히는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정리가 된 ― 까닭일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 관한 자질구레한 미련 따위, 죽음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숨 쉬고 있는 동안은 살아갈 따름이라는, 죽음 앞의 단호함과 초연함만이 그녀를 감싸 안고 있다.

 

신경과 클리닉 이사장 히라이 다쓰오는 그녀와의 대담에서 그 연유에 대해 이렇게 추측한다. 그녀가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평소 죽음을 포함한 삶이란 것에 대해 잘 정리해온 덕분이라고. 나는 그 말의 팔 할 정도는 신뢰한다. 어떤 일이든 마음의 준비는 하지 않는 편보다 하는 편이 낫고, 그 수양의 시기 안에서 정리될 것은 가려지고, 단련될 것은 굳은살을 입힌다고 믿는 까닭이다. 평소 이런저런 책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목격한 무수한 이들의 삶과 그에 동반하는 죽음을 들여다보았던 일도 그것에 대한 믿음의 한 방법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분명 얼마간의 보탬은 되었으리라 여기면서.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되도록이면 생과 사를 모두 염두에 두는 진실에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끝없이 의식하고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무용하게도 삶의 어느 순간 마주했던 아끼는 이와의 이별은 상상 이상의 슬픔과 상실감을 안겼고,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일 역시 낯설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닥뜨린 죽음 앞에서 지금까지 삶과 죽음은 하나, 어쩌고 했던 것이 끝끝내 개똥 철학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싶은 자괴감마저 들었으니. 그런데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저 허울 좋은 말만은 결코 아니었다. 나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자명한 일이므로. 단지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넘길 수 있는 수양이 지금의 내겐 한참이나 부족하고,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진실을 마주했을 뿐이다. 

 

끝이 보이고 서야 비로소 죽음을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나는 평온한 일상에서부터 서서히 그것이 시작돼야만 한다고, 훗날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한탄할 지언정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노 요코가 일상과 죽음 앞에서 보인 일련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달으며, 지금의 나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100万回生きたねこ(100만 번 산 고양이) | 佐野洋子 | 講談社

사노 요코가 그린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삶과 죽음 #. 백만 번 산 고양이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난 고양이가 있다. 그때마다 주인들은 한결 같이 고양이를 아꼈고 떠나 보낼 땐 눈물을 훔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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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 p.243 『사는 게 뭐라고』 

 

나는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가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 p.157 『죽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 6점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마음산책
죽는 게 뭐라고 - 8점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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