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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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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리움은 네가 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지난달 초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때 이른 죽음이라고 혼자서 안타까워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꺼내어 몇몇 시들을 잠시 살펴보았는데, 애써 담담하지만 지독하게 쓸쓸해서 누군가에게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서 라도 입을 떼야할 것 같은 절박함이 전해 왔다. 두 해 전 나는 그것에 대하여 계절의 탓이라고 했지만, 한층 내 안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외로움은 별안간 들려온 시인의 소식과 맞닿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하염없이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정에 내몰렸다.

 

요 며칠, 그런 시인의 시들을 가슴 한 켠에 담아둔 채로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읽어 보았다. 내가 읽은 시인의 산문집은 사실상 시집과 다름에 없었다. 단지 한결 친근감을 가지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음이 조금 달랐을 뿐. 그 온화한 가운데서도 어쩌지 못하고 비치는 고독과 적막이 애달프면서도 결국 이 모든 것을 껴안아야만 비로소 삶의 아름다움이 존재함을 새삼 느끼게도 했다. 참고로 이 산문집은 지난 2003년 발간된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의 개정판으로, 139개의 짧은 산문과 9통의 편지를 담고 있다.

 

부디 바라 마지않던 흰 꽃을 시인이 하늘길의 어둠 속에서 발견했기를 바란다.

 

 

 

밤에 마당에 서 있으면 흰 꽃들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꽃은 희게 빛난다. 문득 하늘을 본다. 하늘길 위를 비행기가 엉금엉금 걸어가고 있다. 하늘이 길인 것이다. 땅만큼 길인 것이다. 언젠가 하늘길을 다시 밟을 때 어둠 속에서 이 흰 꽃들을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 사무치는 빛. 그러면 하늘길을 돌아 지상의 길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기에…… 하늘에 묻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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