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쇄가 발행되고 189만 7700부가 판매된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
어떤 작은 행위가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우리 삶엔 왕왕 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직감적으로 전해오는 미묘한 불안감이나 초조감을 감지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라 금세 잊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러는 마음 한 켠에 담아두고 있으면서도 애써 잊고자 하는데, 어느 쪽이 됐든 결과적 의외성이나 그 파장의 크기를 짐작하기는 어려우리라. 우리는 이 기묘함을 두고 어떤 우연이 일련의 흐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 어쩌면 이 모든 게 실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필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훗날 이해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들른 헌책방에서 마주한 H전집이 ‘나(후미오)’에게 그랬다. 모든 것이 낡아 보였고 실제로도 낡았던 그 공간에서 유독 새 것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는 H전집을 발견했던 순간, 그는 그것의 존재 자체에서 기이함을 느꼈을지언정, 그 여파가 자신을 비롯한 약혼녀(세쓰코)와 전집의 원소유자였던 사노, 그 밖의 인물들과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삶으로 확장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그것은 곧 각자의 상황 안에서 한 번쯤은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가 마주하고 겪어내야 할 사회와 시대를 향한 청춘들의 격렬한 부대낌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애당초 후미오가 헌 책방에서 H전집을 손에 넣는 일이 없었더라도 다른 무언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각성케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향한 고민, 이를테면 삶의 방향성과 그 방식에 대하여 비로소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대응해가는 시기에 놓인 이들인 이유다. 물론 그 매개가 된 것이 H전집이었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모든 인물들이 매번 같은 결말에 이르리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전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시대와 배경을 지우고 읽는다 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다. 그 이유는 한 차례의 거센 소용돌이를 거친 후 잔잔해진 후미오의 생각으로 대신한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우리의 삶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는 말 속에 담긴 ‘살아감’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오래됐지만 결코 낡지 않은’ 청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 p.196, 197
그래도 우리의 나날 -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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