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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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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 난다 그리움은 네가 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지난달 초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때 이른 죽음이라고 혼자서 안타까워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꺼내어 몇몇 시들을 잠시 살펴보았는데, 애써 담담하지만 지독하게 쓸쓸해서 누군가에게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서 라도 입을 떼야할 것 같은 절박함이 전해 왔다. 두 해 전 나는 그것에 대하여 계절의 탓이라고 했지만, 한층 내 안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외로움은 별안간 들려온 시인의 소식과 맞닿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하염없이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정에 내몰렸다. 요 며칠, 그런 시인의 시..
역사의 역사 | 유시민 | 돌베개 왜 역사를 읽는가, 어떻게 역사를 쓰는가 역사로 남은 역사가와 역사서를 탐사한 지식 르포르타주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역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누군가에 의해 쓰여 왔고, 불특정 다수는 그것을 읽어 왔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 무한 루프 안에서 인류는 무엇을 위해 오늘도 역사를 쓰고 읽으려 하는 것일까. 대다수는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추측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나 역시 근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 했던 생각과 감정들에 한껏 교감하는 것은 물론, ‘서사의 힘’이 주는 재미 역시 만끽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는 역사를 타산지석 삼아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데, 이는 곧 시공간을..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백영옥 | arte 일상 곳곳에서 수집한 치유의 밑줄들 프롤로그에서 늘 책방을 열고 싶었다는 저자. “그 서점이 약국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속의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 주는 동네 약방처럼요.”(p.8)라고 덧붙이면서. 꽤 흥미로운 바람이고, 진짜 그런 서점이 있으면 어떨까, 정말 좋겠다고 상상해 봤다. 마음이 아플 땐, 약보다는 진심으로 와닿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문장이 훨씬 탁월한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런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 주는 서점은 내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가 보물 찾기를 하듯, 책 속에서 보석 같은 문장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곤 하는 게 보통이니까. 백영옥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이 한 권의 책으로써 저자가 바라 마지않던 ― 약..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 까치 쌍둥이 형제의 처절한 운명이 교차하는 3부작 소설 모든 인간 군상이 악착같다. 삶을 붙들고자, 때로는 벗어나고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이리라. 각자의 가슴에 품은 욕망과 좌절, 상처와 두려움, 희망과 절망은 온통 암흑 뿐인 세계 안에서 한층 명확해지지만, 차라리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극명히 마주하게 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그 허약한 존재의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삶 이야기라서 애잔하고,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01. 「비밀 노트」 쌍둥이 형제가 엄마 손에 이끌려 도착한 할머니 집은 어느 국경의 작은 마을이다. 엄마는 그곳에 형제를 두고 떠나고, 괴팍한 할머니 밑에서 살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한 생존 방식을 터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