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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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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세계의 태엽을 감는 것은 누구인가? 수수께끼와 탐색의 집요한 연대기 어느 날 홀연히 출근 모습 그대로 사라진 아내를 되찾기 위한 한 남자(오카다)의 지난한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녹록지 않은 과정에 비례하는 방대한 양은 늘 그래 왔듯, 견고한 짜임새와 흥미로운 이야기 안에서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가 삶 안에서 이따금 마주하곤 하는 어떤 –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 기이한 흐름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어딘가 멀리서 뻗어 나온 긴 손’(p.837)에 대한 것이 그렇다. 옅은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하며 혹은 까맣게 모르고서 지나쳐 온 일들이 실은 투명한 줄에 줄줄이 매달린 하나의 뭉텅이였음을 깨닫는 찰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
영원한 외출 | 마스다 미리 | 이봄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알게 된 슬픔 그 슬픔 끝에서 고개를 내미는 일상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보내드리는 일은 마치 세탁하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기왕이면 세탁기 말고 정성스레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세제를 적당히 푼 미지근한 물에 빨랫감을 잠시 담가 두었다가 얼룩지고 때 묻은 부분을 손수 맞잡고 비빈다. 몇 차례에 걸쳐 거품을 빼고 비로소 깨끗해진 세탁물은 옷감이 변형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힘 조절을 해가며 물기를 빼, 서너 번 공중에서 털어 빨랫줄 위에 넌다. 하루 이틀 꼬박 잘 말린 옷은 반듯하게 다림질해 옷걸이에 걸어두고, 또 어떤 옷은 잘 개서 서랍장에도 넣는다. 이렇게 품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야만 끝이 나는 손세탁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 문학과지성사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계절의 흐름 안에서 묻는 안부가 사려 깊다.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p.11) 말하는 소박한 바람과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p.49)다는 에두른 인사가 너른 마음 씀씀이를 가늠케 한다. ‘가을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고 믿는’(p.64) ‘나’는 섣달의 어느 날,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p.83) 생각에 며칠간 뜸했던 부엌으로 향하며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 조심스러운 한마디, 과장하지 않는 몸짓 하나하나는 사소한 듯 하나 더없이 살뜰하기만 하다. 그렇게 내 안에 스며든 마음, 조금 보태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지는 기분이 든다. 그 대상을 찾아 ..
소피의 세계 | 요슈타인 가아더 | 현암사 철학자가 보내온 의문의 편지로 시작되는 환상적인 철학 탐험!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두툼한 책을 펼치면, 독일의 시인 요한 볼프강 괴테의 시가 등장한다. ‘지난 3,000년을/ 설명할 수 없는 이는/ 하루하루를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리라.’ 막 떠나려는 기차에 간신히 몸을 싣기라도 한 듯한 안도감이 순간 온몸을 감싼다. 물론 이 한 권을 읽는 다고 해서 기나긴 세월을 쉬이 설명할 리 만무겠지만, 적어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도 했던 존재로 남고 싶은 ― 얄팍한 지적 호기심 충족에 불과하나, 실로 포기하기 힘든 ― 속내가 보태어진 듯도 하다. 3,000여 년에 이르는 그 방대한 철학의 역사는 최초 인류가 출현한 에덴동산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