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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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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김멜라 외 | 문학동네 # 01. 「이응 이응」, 김멜라 할머니와 반려견 보리차차를 잃고 ‘나’는 이응이 보급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포옹을 나누는 클럽 ‘위옹’에 가입한다. 그 결정은 어쩌면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p.10) 보라 했던 생전 할머니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도 ‘나’에게 그 조언은 제법 유용했던 것 같다. 이응의 쓸모가 단순한 욕망 해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교류를 통해 맺은 관계가 가져온 상실의 빈자리를 채워줄 획기적 대체품이 될 수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위적 설정과 그것의 터득, 나아가 해결을 위한 소모품이라는 지점에서 역시 불편해지고 만다. 저항감이 있더라도 그렇게 체득한 것은 결국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은 욕망 앞에서 무용해지며 또 한 번의 ..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 에밀리 디킨슨 | 을유문화사 내면으로 침잠하여 지상의 환희로 나아간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대표 시 선집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히는 에밀리 디킨슨. 그녀는 독신의 삶을 살며 제한된 공간 속에서 내면의 사색을 추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는 그런 그녀의 삶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테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제도권 안에서 순응하고 안주하는 대신 마주한 모든 것들에 대한 내면화를 시도함으로써 주체적으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해하고자 했음을 여실하게 보이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시에서 무수히 등장하고 있는 대시(dash)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품었던 생각들 — 기쁨과 즐거움, 괴로움과 고통, 억압과 구속, 의문과 확신, 감동과 여운… — 은 ..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 요시타케 신스케 | 한겨레출판 못하는 일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저자 요시타케 신스케는 그림 에세이를 통해 자신이 ‘결국 못 하고 끝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곤란하고 어려운 일에 대한 고백인 셈이기도 해서 그 솔직함이 귀엽기도 하고 때때로 나 같은 사람이 여기 있었네, 싶은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가령 생선 요리를 먹을 때 초고난위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라도 된 듯, 가시와의 사투를 벌이곤 하는 나의 서툰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일이 그것. 이 외에도 그가 털어놓은 이런저런 이야기들 안에서 새삼 한 인간이 자기라는 사람에 대하여 진지하게 마주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여 보기 좋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서투름을..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에리카 산체스 | 동녘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저자 에리카 산체스는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 젊은 유색인 여성, 양극성 장애 환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였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태생적 환경은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은 존재”(p.5)로 여기게 만들었고, 온갖 사회적 편견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글 쓰는 삶을 위하여 많은 어려운 시간들을 감내해 냈고, 비로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일상이 평온하기 그지없”(p.308)는 삶에 도달했다. 그 안에서 새삼 가장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지만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던 수많은 고비들을 잘 넘겨,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쟁취해 낸 그녀와 그 삶에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온전한 그녀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취인..
잘 지내니 | 톤 텔레헨 | arte 사랑한다는 말 대신,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지내니? 혼자와 함께, 그사이 어딘가쯤 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인사 동물들은 저마다 사정을 안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외로움에 떨기도 하며, 때로는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바라며 적당한 거리를 원하는 한편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희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흡사 우리와 닮았다. 삶의 순간순간 마주하는 자신과 타인을 향한 감정들은 우리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에 대하여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된다. 톤 텔레헨의 『잘 지내니』는 그에 대하여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진심 어린 안부 인사를 건네는 일이라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는 것 같다. “잘 지내니?” 짧은 인..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 요시모토 바나나(글)∙수피 탕(그림) | 한겨레출판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처럼 포근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 에세이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 거듭된 과정 안에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단연코 사랑의 힘이었으리라. 요시모토 바나나가 글 쓰고 수피 탕이 그린 그림 안에서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날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고 밥을 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그때 자주 해주셨던 진한 된장국의 맛으로 남아 있다. 후일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도마 앞에 서면 그 시절 아빠가 알려주었던 무 써는 방법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빠를 추억한다. 한편 자신이 온 세상인 것처럼 꼭 붙어 있던 아이가 훌쩍 성장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대견해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릴..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 헤르만 헤세 | 뜨인돌 '어떻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헤르만 헤세의 홀로서기 인생론 비루한 삶에 대항하는 최상의 무기는 용기와 고집, 인내다. 용기는 자신을 강하게 해주고, 고집은 인생을 재미있게 해주며, 인내는 평안을 허락한다. - p.13 「용기, 고집, 인내」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에 엮인 편지와 일기, 시와 산문은 그 제목에서 짐작하듯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자면 단연 ‘자신의 감각’(p.27)이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 때로 거친 반발과 투쟁의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길 바랐고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
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 사노 요코 | 민음사 심각한 고민도 어느새 훌훌 털어 버리게 만드는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그림 에세이 시바견 잡종 강아지로 알고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커갈수록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를 지녔다면..? 이럴 때 반려인은 예상치 못한 외형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교감을 쌓으며 이미 한 가족이 된 마당에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외에도 사노 요코만의 솔직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새삼 그녀의 거침없고 명쾌한 이야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달까. 더욱이 정감 가는 그림이 더해져 보다 생생하게 요코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