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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셔윈 B. 눌랜드 |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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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50여 년간 무수한 죽음을 접해온 의사가 던지는 충격과 감동의 메디컬 에세이!

 

 

 

어릴 적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죽음은 매우 아득한 일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심한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지독한 상심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그것으로부터 더더더 멀리 도망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랬던 확고함에 조금씩 틈이 생겨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한 무수한 죽음의 목격과 그 상황에서의 그들 사유가 차츰 시고의 변화를 가져왔었다는 것이 지금 와 생각이다. 무작정 기피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대비하고 대응해 나가야 하는 쪽의 것으로 생각이 기운 것이다. 여전히 죽음 곁엔 두려움이라는 세 자가 따라붙지만, 그것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걸맞은 자세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유다.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읽게 된 것도 그런 생각들의 일환이리라.

 

 

생에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모든 즐거움과 성취감, 그리고 고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의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직시할 때, 세상은 한층 더 빠르게 진보될 수 있고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 p.138, 139

 

 

저자 셔윈 B. 눌랜드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의 삶 안에서 목격했던 무수한 죽음들에 대해 말한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소상히 밝히는 것이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묘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누군가의 실황이기도 하기에 애써 담담하면서도 진심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형의 위중한 병세 앞에서 그 역시 객관성을 잃은 한 명의 무기력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음에 대한 고백은 그 어떤 예보다도 진실하게 다가온다. 삶에서 희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헛된 바람은 자칫 독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 의사인 자신마저도 속여야만 했던 불가능의 희망은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오고 만 것이다. 처한 현실에서 최선의 희망을 찾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를테면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바람을 차근히 실현해 나가는 편이 환자 본인에게나 가족들에게 보다 유익할 수 있음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자신 혹은 가까운 이가 맞이할 죽음일수록 냉철한 판단은 힘들기 마련이므로 말이다. 생과 사를 초월한 확고한 인생관의 정립 이후에나 가능할는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저자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거의 불가능함의 미미한 가능성에 매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확신한다. 다만 그에 앞서 존엄성 깃든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데 충실해야 할 것이다. 

 

 

죽음 속에 내재된 위대한 존엄성은 죽음 전의 인생이 얼마나 고귀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존엄한 죽음은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희망의 한 형태이고, 그 희망은 생전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존재 여부가 갈리게 된다.    - p.352

 

 

 

그러므로 건강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것에 우선적으로 몰두하기로 하자. 그것이 결국 삶과 죽음의 존엄성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최소이자 최대의 방비책이 될 것이다. 또한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 중요할 것 같다. 말하자면, 자연의 메커니즘을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자 역시 맺음말에 이르러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므로 마음 깊숙이 담아두고자 한다.

 

사람 역시 여타의 동물이나 식물처럼 자연 생태계의 일부분이다. 자연은 인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이 계속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죽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기적적인 생을 받아쥔 사람들이다. 우리들에게 길을 뚫어주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 생물들은 단지 우리를 위해 죽어갔던 것이다. 우리 역시 다른 생물들이 살 수 있도록 죽어야 한다. 자연의 평형 속에서 이루어진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는 비극일지도 모르나 계속 살아 숨쉬는 모든 개체의 승리로 남게 되는 것이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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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팅 발행 즈음, 켄 윌버의 『무경계』를 읽기 시작했는데 마침 자연과 인간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 차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자연세계에도 당연히 삶과 죽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세계에서와 같은 끔찍한 면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늙은 고양이는 죽음이 임박했다고 해서 공포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숲으로 들어가서 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죽음을 맞을 뿐이다. 병든 울새는 버드나무 가지에 편안히 앉아 황혼을 바라본다. 그러다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땅에 떨어진다. 인간이 맞이하는 죽음의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    - p.46, 47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10점
셔윈 B. 눌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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