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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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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문유석 | 문학동네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기본적으로 책 읽는 데는 너른 만족감이 자리한다. 한동안의 시간을 즐겁게도 하고 위로와 감동을 주기도 하니까. 더불어 나란 사람의 사고를 넓히고, 타인과 그들의 삶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의 씨앗을 쉼 없이 싹 틔우게도 한다. 결국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도무지 읽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이를 만나는 것은 반길 일이다. 올 초 흥미롭게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 판사가 새로이 선보인 『쾌락독서』를 선뜻 손에 쥐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였다. 자칭 책 덕후가 자신의 독서 인생을 솔직하게 담았다는 이 책은, 책을 좋아해서 꾸준하게 읽어온 저자의 독서 이야기인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
전쟁과 평화 | 레프 톨스토이 | 문학동네 거대한 서사로 완성한 모든 인간과 모든 삶에 대한 초상 생의 철학자 톨스토이가 남긴 불멸의 걸작 1805년에서 1820년까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방대한 소설의 양 만큼이나, 등장 인물도 다양하다. 그 다채로운 군상들이 보여주는 삶과 죽음의 모습은 소설 속 시대와 배경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니기에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것이리라. 동시에 톨스토이가 바라본 세상을 향한 시선과 사고에 전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돼 준다. 그 안에서도 흔히 역사가 주목하는 이를테면,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영웅적 존재 대신 역사의 숨은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민중들에 시선을 옮기고, 그들의 삶에 무게 중심을 둔 이야기이기에 한결 돋보이는 역작이기도 하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
눈사람 여관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불가능한 슬픔을 쥐고 아낌없는 혼자가 되는 시간, 세상의 나머지가 세상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 세상에 나 혼자 우두커니 있음을 두려워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그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내 눈앞의 어둠이 전부여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가만히, 그 어둠들을 삼키고만 있었다. 그렇게 어느 골방에서 한탄하며 무기력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 순간을 외려 소중하게 보냈어야 했다. 어둠 속에서 한층 또렷하게 갈망하던 그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를 다지고, 주변을 살폈어야 했다. 그러나 한참은 모자란 존재여서 무력하기만 했다. 문득 그때 이병률 시인의 시집 『눈사람 여관』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외로움과 결부되어 있는 이 생을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 한겨레출판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언제나 나의 슬픔이 공고하게 버티고 있었기에 그것은 늘 내 슬픔 뒤의 것이었다는 자각이 앞선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외려 위선이라고 여기면서. 존재 자체가 결함이라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의 슬픔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는 점만은 강조하고 싶다. 덧붙여 여력이 닿는 한 그들의 슬픔을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싶은 마음 역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이 몹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학 뿐 아니라, 영화와 노래..
100万回生きたねこ(100만 번 산 고양이) | 佐野洋子 | 講談社 사노 요코가 그린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삶과 죽음 #. 백만 번 산 고양이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난 고양이가 있다. 그때마다 주인들은 한결 같이 고양이를 아꼈고 떠나 보낼 땐 눈물을 훔쳤으나, 정작 누군가의 고양이였던 그 자신은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러다 누군가의 고양이도 아닌 들고양이로 태어나 마음에 꼭 드는 하얀 고양이를 만나고 새끼도 낳는다. 이전과는 분명 다른 생(生)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바라는 것을 이루며 온 마음을 다한 삶이었기에 말이다. 짤막한 그림 동화가 주는 울림이 크다.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고양이가 결국 쏟아내고 말았던 눈물의 의미, 그리고 더 이상은 다시 살아나지 않은 고양이의 진심에 가슴 한 켠이 아려 온 것이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 난다 그리움은 네가 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지난달 초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때 이른 죽음이라고 혼자서 안타까워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꺼내어 몇몇 시들을 잠시 살펴보았는데, 애써 담담하지만 지독하게 쓸쓸해서 누군가에게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서 라도 입을 떼야할 것 같은 절박함이 전해 왔다. 두 해 전 나는 그것에 대하여 계절의 탓이라고 했지만, 한층 내 안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외로움은 별안간 들려온 시인의 소식과 맞닿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하염없이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정에 내몰렸다. 요 며칠, 그런 시인의 시..
역사의 역사 | 유시민 | 돌베개 왜 역사를 읽는가, 어떻게 역사를 쓰는가 역사로 남은 역사가와 역사서를 탐사한 지식 르포르타주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역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누군가에 의해 쓰여 왔고, 불특정 다수는 그것을 읽어 왔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 무한 루프 안에서 인류는 무엇을 위해 오늘도 역사를 쓰고 읽으려 하는 것일까. 대다수는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추측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나 역시 근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 했던 생각과 감정들에 한껏 교감하는 것은 물론, ‘서사의 힘’이 주는 재미 역시 만끽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는 역사를 타산지석 삼아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데, 이는 곧 시공간을..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백영옥 | arte 일상 곳곳에서 수집한 치유의 밑줄들 프롤로그에서 늘 책방을 열고 싶었다는 저자. “그 서점이 약국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속의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 주는 동네 약방처럼요.”(p.8)라고 덧붙이면서. 꽤 흥미로운 바람이고, 진짜 그런 서점이 있으면 어떨까, 정말 좋겠다고 상상해 봤다. 마음이 아플 땐, 약보다는 진심으로 와닿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문장이 훨씬 탁월한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런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 주는 서점은 내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가 보물 찾기를 하듯, 책 속에서 보석 같은 문장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곤 하는 게 보통이니까. 백영옥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이 한 권의 책으로써 저자가 바라 마지않던 ―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