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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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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백수린 | 창비 깊은 사색이 담긴 아름다운 문장,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을 일깨워준 모든 존재에 대한 기록 제 안의 행복을 샘솟게 하는 것들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째 언덕 위의 집에 사는 작가가 털어놓은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 안에서 나는 이 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도리어 포근함을 느낀다. 어쩌면 안도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그것은 우리가 쉬이 생각하고 단정 짓는 행복의 잣대에서 한 걸음 물러 선, 이 시대에 자꾸만 뒤로 밀리고 마는 어떤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까닭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마도 나는 지친 가운데서도 그런 확신할 길 없이 멀어져 가는 그 마음을, 그런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도 같다. 정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p.105)을 품어 본다. ..
크리스마스 타일 | 김금희 | 창비 크리스마스 타일처럼 이어 붙인 우리들의 마음, 열심히 사랑하고 이별한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기에 조금은 더 오래 기억될 시간을. 대개 사람들은 평소보다 설레면서도 따뜻한, 애틋하면서도 고마운, 황홀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루를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런 기대를 품고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러나 바람과 달리 아픔과 슬픔이 있고 실패와 좌절, 당혹감과 죄책감을 맞닥뜨리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일곱 편의 연작 속 인물들을 통해 마주한다. 요 며칠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리라.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의 기적을 소망한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
마법의 순간 | 파울로 코엘료 | 자음과모음 당신이 기다려온 마법의 순간은 바로 오늘입니다 하루 한 줄의 글귀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노(老) 작가의 삶을 향한 지혜는 마법과도 같다. 그늘 진 웅크린 마음을 보듬으며 다시금 일어서 나아갈 수 있는,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이다. 그와 같은 마법의 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날도 더러는 있는 게 우리 삶이기에 하는 말이다. 무얼 하던 중이든 1분만 모든 동작을 멈추세요.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진 삶에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세요.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 p.85 마법의 순간 (리커버) -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자음과모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진은영 | 문학과지성사 그러니까 시는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는 시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시인은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에 그러니까 시를 썼다. 이 땅에서 목도한 슬픔과 절망 그로 인한 고통을 지그시 참고 견디며 함께 이겨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를 썼다. 그런 까닭에 시들이 나를, 우리를 깨운다. 함께 애써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마주 잡은 두 손으로 훼손당한 것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사랑해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시는, 진은영 시인의 시는 그렇게 나를 흔들었다.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새해가 밝아오기 직전, 세 노인은 호텔방에서 엽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 일로 남겨진 가족들과 지인들은 뒤처리를 위해 서로를 마주한다. 장례를 마친 뒤에는 어찌하여 그런 선택을 했는지, 여전히 혼란한 가운데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데. 할아버지를 잃은 손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의 관계를 좇아 공원묘지에서 인사한 것이 전부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냄으로써, 아버지를 잃은 딸은 황망함에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서야 애써 준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러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러나 떠난 이의 마음에 온전히 가닿을 수 없음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 애쓰는 일을 통하여 먼저 간 이를 진심으..
신신예식장 | 한승일 | 클 결혼은 선택, 예약은 필수 언젠가 TV 모 프로그램에서 노부부가 운영 중이라는 작고 오래된 예식장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도 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인테리어가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유물처럼 보여 외려 이색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다. 그러나 실상 그곳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이어지 있고 있는 엄연한 삶의 현장이었고, 그 사이에서 오는 간극이 흥미로웠다. 서점 매대에서 『신신 예식장』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프로그램 속 그 예식장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국에 노부부가 사이 좋게 일당백의 역할을 나눠하며 무료 예식을 해주는 곳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기에 알아채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967년 경남 창원에서 신신 예식장을 운영..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소설이 시간을 상상하는 여덟 편의 방식과 이야기가 우리 삶을 바꾸어내는 경이의 순간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경험, 이를 바탕으로 터득한 현실의 체험이 외부 세계와 맞닿는 중에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삶이 단선적이지 않은 연유리라.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김연수 작가의 신간 소설집에 엮인 여덟 편이 그 좋은 예이다. ‘이야기’의 형태로 구현하는 삶, 그 안에서도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이들과 조우하게 하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자신과 외부 세계의 접점을 보다 능동적이면서도 다각적..
작은 파티 드레스 |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깊은 책, 독서, 글쓰기라는 화두에서 시작해 사랑의 시로 마무리되는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 서문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은 사유한다. 읽는 것에 대하여. 그 단순한 행위가 우리 삶에 결코 단순하지 않음에 대하여, 그렇게 전 생애 속에서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과 읽기가 전부인 사람, 그러니까 결핍이 부족한 책을 읽지 않은 사람과 “언어들의 고독과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p.15)서 일생을 머물게 되는 사람에 대하여 살피는 것이다. 뒤로 이어지는 아홉 편의 글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읽고 쓰는 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저자가 ‘당신’이라 지칭하는 이의 생각을 좇음으로써 그 끝에 사랑이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그 여정을 따르는 일은 어둑한 밤길을 거니는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호젓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