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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 다와다 요코 | 엘리 언어와 함께 가장 먼 여행을 떠난 다와다 유니버스의 시작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다와다 요코의 안개 자욱한 시선을 좇는다. 그것은 이를 테면 “언어가 큰 바다를 날아서 건너갈 수 있을까?”(p.253)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는데, 언어 단 한 가지만을 품에 안은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기에 모든 순간순간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경계를 단박에 넘나드는 상상과 언어의 자유에서 기인하리라. 『유럽이 시작하는 곳』(1991) 나는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p,22) 부모님이 세 번 반복해 말하던 마법의 말을 기억하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는다. 단순한 도시 이름일 뿐 아니라 꿈의 장소이고, 쉬이 다다를 수 없는 불가능의 성..
압록강은 흐른다 | 이미륵 | 민음사 문학을 통해서만 건널 수 있었던 그리움의 강 양반집 외아들로 태어난 미륵의 유년은 평화로웠다. 사촌 수암과 뛰놀며 서당에서는 한학을 배웠고, 신식 학교에 입학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습득하며 새 시대의 도래를 고대했다. 그러나 나라의 정세가 급변하여 일본에 강제병합되는 처지에 이르렀고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어머니의 권유로 집안의 토지가 있는 마을 송림에서 휴양하며 지내다 서울에서 다시 학업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3월 1일 일본에 항거하는 민족적 시위에 가담한 일로 수배를 피해 낙향했다. 그럼에도 재차 달아나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고는 마침내 독일에 도착하여 언어를 ..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 박상영 | 래빗홀 26년 만에 재가 되어 돌아온 여자 작은 상자에 담긴 뜨거운 진실 혹은 사랑의 기록 검은 욕망과 사랑이 뒤엉켰을 때 두 사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량에 올라탄 모양새이지 않을까. 내내 폭주하고 막바지에 다다라 크게 부딪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처참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행복 아닌 파멸을 위해 악착같은 삶을 자처했고, 그런 와중에 사랑을 꿈꾸며 끝내 복수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욕망에 몰두하는 동안 선과 악의 경계는 점차 무의미해졌고, 그들 자신마저 해치는 비극을 감당해야 했기에 그것은 상상 아닌 지독한 현실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잇는 유일한 존재, 마츠노 하나는 참극이 빚어낸 결과 앞..
상상 속의 삶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또다른 삶의 가능성 상실의 자리를 되짚어 가닿은 투명한 진실 우리는 이따금 삶의 무언가를 상실하지만 남겨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결같이 고되다. 원망과 분노의 마음이 클수록 극복의 과정은 버겁고 제 삶 마저 망가뜨리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하기에. 스티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는 늘 그의 삶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 앨리슨 역시 자신의 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은 관계마저 어긋나게 만들었으므로. 하지만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아버지란 존재에 다가서고자 여행을 떠났고,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를 몹시 사랑했고, (…)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p.426) 인정하게 ..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 허수경 | 난다 이 지구에 더는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 허수경의 마지막, 유고 시집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자리한 곳이 어디든 거기서 잘 지내라고……. 내게는 마흔두 편을 엮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 시집이 시종 그렇게 다가왔다. 몸은 진작 떠났지만 남기고 간 시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안부 건네는 시인의 속삭임이 반가우면서도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나 보다. 손금을 말하며 “서럽고 따뜻하고 흐릿하다”(p.58) 했던 감상이 마음속에서 자꾸 맴돈 탓인지도 모르겠다. 타향에서 지내며 마음 한편에 고이 자리를 내주었던 고국 생각…, 고향 땅의 모든 것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그 세심한 마음들을 헤아려 보며 시인이 사라진 세상, 그럼에도 시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계에 한동안 가닿을 수 있었다. 더욱이 수록된 세 편의 ..
인비인 | 성해나 | 한겨레출판 어제의 죄와 오늘의 욕망, 내일의 삶을 흔드는 아홉 편의 괴이한 이야기 구태여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마주하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때로는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세상의 흐름이 그러했다. 언뜻 당혹스럽고 가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욕망과 집착, 그것이 빚어낸 자명한 결과인 탓에 동정심이나 연민의 마음은 일지 않는다. 단지 이를 바라보는 뒷맛이 씁쓸할 뿐. 들춰진 진실 앞에서 경악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과 그럼에도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 제 앞의 몫으로 남겨진 것에 대한 불편함 일 수도 있겠다. 나의 일은 아니지만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감이 서늘함을 키우는 것이리라.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한층 마음을 홀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제’와 ‘오늘..
계절의 수첩 | 고다 아야 | 책사람집 『나무』의 작가 고다 아야가 딸에게 남긴 생활의 마음 계절의 흐름 안에서 문득 오감을 깨우는 순간을 맞이한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늘하고 불쾌한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경험 안에서 자신만의 계절을 감각하는 것이리라. 저자 고다 아야는 그때의 기억들을 그러모아 계절의 수첩에 고이 적어 두었다. 쉬이 잊히고 말 순간의 감상을 곱씹으며 애써 문장으로 남긴 그녀의 세심한 마음을 자연스레 헤아려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계절이 선사한 경이로움과 그에 못지않은 인간의 다정한 마음일 것이라고 여기면서. 자연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알아채는 기민한 감수성과 그 대상에 다가가려는 그녀 나름의 방식이 이루어낸, 그야말로 자연과 삶에 대한 예찬인 연유다. 그 가운데서 문득 ..
안과 겉∙결혼∙여름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모든 작품의 원천 「안과 겉」 자연과 인간의 합일 「결혼」 지중해의 추억 「여름」 # 01. 「안과 겉」 스물두 살의 알베르 카뮈는 — 표현 형식에 있어 다소 미숙했다는 자평이 무색하게 — 분명한 자기 인식과 삶에 대한 성숙한 이해가 있었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p.86)는 것을 이미 마음속 깊숙이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결코 불행한 적 없던 가난과 내리쬐던 태양 아래에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자신이 경계해야 했던 편견과 어리석음 역시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훗날 글을 쓰는 예술가로서 살아갈 삶과 이룩할 문학 세계의 원동력이 돼 주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삶의 안과 겉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