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꾼 닐 게이먼이 완성한
이 시대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북유럽 신화
신화를 떠올리자면 우리 민족의 시조이자 이 땅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신화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이와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 역시 빠뜨릴 수 없는데,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과의 만남은 새롭고도 우아했고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에 매혹되기도, 때로는 그 잔혹함에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했었다. 어찌 됐든 한동안의 나는 그 미지의 세계를 정처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부유해야 할 만큼 매료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북유럽 신화는 어떨까. 닐 게이먼은 작가의 말을 통해 “북유럽 신화는 길고 긴 겨울밤과 끝없이 계속되는 여름날이 존재하는 추운 지역의 신화, 자신의 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신뢰하지도 않고 마냥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신화다.”(p.56)라고 적고 있다. 절대적이지 않은, 그러나 그들 존재와 그들이 누비던 터전을 기꺼이 인정하며, 이 모든 것에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신비의 힘을 지닌 신들의 이야기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리라. 사실 수년 전, 마블의 영화 <토르>를 통해서 거대한 망치를 손에 쥔 토르와 교활하기 짝이 없는 로키, 이들의 아버지인 오딘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원현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영화 이후로도 그것 외 더 아는 바가 없었던 셈이었다. 그저 언젠가 북유럽 신화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 들렀던 서점에서 매력적인 자태로 반짝이고 있는 묠니르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집어 들기까지는 순전히 표지의 힘, 마케팅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물론 그 덕에 기약에 없던 언젠가가 앞당겨졌으니 외려 다행이라고 봐야 할 성도 싶다.)
닐 게이먼의 손끝에서 재편된 북유럽 신화는 스토리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모름지기 신화 속 신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지혜롭고 영특하며, 용감하고 위엄 있는 모습은 혹독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 한층 빛나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나 최고의 지혜를 얻고자 자신의 한쪽 눈을 과감히 내어 놓은 오딘의 결단력과 그 비범함은 신으로서의 면모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 – 도무지 신이라고 믿기지 않은 – 불완전한 면모가 더해져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숨길 수 없는 식탐을 드러내는 토르의 게걸스러운 모습이나 술 취해 재미 삼아 토르의 아내 시프의 아름다운 금발을 민머리로 만드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 등이 이에 해당한다. 더욱이 북유럽 신화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게도 더 풍성한 상상력을 자극하게도 하는데, 그 안에서 우리의 세계관 역시 한층 확장되리라.
북유럽 신화를 읽고 다시 만나는 마블 영화는 분명 이전에 알아 채지 못했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지 않을까, 문득 기대된다.
곧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바다가 육지를 휩쓸면서 잿더미를 집어삼키고,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태양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 잊혀간다. 그렇게 세상은 재와 홍수, 암흑과 얼음 속에서 종말을 맞게 된다. 그것이 신들의 마지막 운명이다. 그게?? 마지막이다. 하지만 마지막 뒤에 찾아오는 것들도 있다. 잿빛 바닷물에서 다시 녹색 땅이 생겨난다. 태양은 늑대에게 먹히지만, 태양의 딸이 자기 어머니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새로운 태양은 젊고 새로운 빛을 내뿜으면서 낡은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난다. 여자와 남자, ‘생명’과 ‘생명에 대한 갈망’은 세상을 하나로 감싸고 있는 물푸레나무 안에서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녹색 대지에 맺힌 이슬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을 통해 인류를 번성시킨다. 아스가르드는 사라지겠지만, 한때 아스가르드가 있던 곳에는 이다볼(Idavoll)이 들어서서 눈부신 모습으로 계속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 p.295, 296 「라그나로크, 신들에게 닥친 최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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