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허수경 | 문학과지성사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시계판 속 바늘은 1은 2를 향해, 2는 3을 향해…… 11은 12를 향해, 그리고 12는 다시 1을 향해, 끝없이 반복한다.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순간, 그 찰나에 품었을 나와 당신, 고독과 공허,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에 대한 시(詩)가 한데 모였다.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시계판의 굴레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할 운명들임을. 그러므로 그 숨이 붙어 있는 한, 어디로든 발걸음을 떼야만 하는 존재들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을. 그 앎이 지금 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