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14) 썸네일형 리스트형 삶을 견디는 기쁨 | 헤르만 헤세 | 문예춘추사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의 깊은 사색 안에서 삶을 견디는 기쁨을 마주한다. 짐작건대 그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무엇 하나 허투루 생각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유심히 살피며 그 안에 깃든 기쁨과 궁극적 행복을 응시하는 존재였으리라. 그런 까닭에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때때로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삶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따스한 온기,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이 표현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날에 주어지는 선물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할 것이”(p.101)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마주한 시련을 외면하지 말고 꿋꿋하게 견뎌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격려한다. 무엇보다 일상 속 사소한 기쁨을.. 각별한 마음 | 장자크 상페 | 열린책들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먼저 ‘각별한 마음’이라는 제목에 이끌렸다는 것부터 밝혀야겠다. 그런 까닭에 장자크 상페의 그림과 이야기들 안에서 자연스레 그가 그리고자 했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내 시선 안으로 단박에 들어온 그림이 하나 있다. 벽에는 크고 작은 작품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고 천장 역시 화려한 천장화로 가득한 유럽의 여느 미술관의 모습이다. 그 안에는 작품들을 감상하려는 관람객들로 몹시 북적이고, 작품 아래 한 켠의 의자에 앉아 그런 관람객들을 살피며 제 할 일을 하는 여인이 있다. 그리고 그녀 앞에 한 남자가 서있다. “당신을 보러 왔어요, 로즈마리.”(p.21)마치 같은 장소지만 그들만의 다른 시간이 흐르기라도 하는듯한 아름다운 순간이지 않은가. 새삼 .. 고비키초의 복수 | 나가이 사야코 | 은행나무 좌절을 끝내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에 관한 미스터리 군상극 기쿠노스케는 무사 신분을 걸고 고향을 떠나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눈 내리는 정월 그믐날 밤, 모리타 극장의 뒷길에서 복수에 성공한다. 그 운명의 날 그곳에 자리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고비키초 사람들이 있었다. 사건이 있고 2년이 지났을 무렵, 한 남자가 극장으로 찾아와 당시 사건을 목격한 5인을 차례로 만나며 그날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 생생한 목격담 안에서 하나 둘 밝혀지는 사건의 내막이 자못 흥미롭다. 더욱이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 기쿠노스케 뿐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악처라 불리는 극장에 정착하게 된 이들을 마주하며 에도 시대에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던, 그럼에도 제 몫을 다하며 생을 살아가는 이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한 남자가 매듭지어야 할 두 사람을 향한 필멸의 과제, 선명해질수록 희미해지는 진실의 아이러니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곧 진실이라고 여기기 쉽다. 심지어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구심을 품더라도 여태껏 자신이 해 온 판단과 소모한 감정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 느끼고는 더욱 열성적으로 믿는 경우마저 더러는 있지 않은가. 꽤나 무모하고 허망한 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지고 마는 것을 이따금 목도한다. 그런 까닭에 삶의 이모저모에서 발견한 믿음의 균열을 섬세하게 감지하고 판단을 제고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함과 용기가 우리 각자에게 필요함을 절감한다. 소설 속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와의 관계에 대하여, “그녀는 나에게 조언하는 벼락이었다”(p.243)고 회고했다.. 살롱 드 경성 | 김인혜 | 해냄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식민지에 이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격랑의 역사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상과 박수근, 이중섭과 김환기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내어놓은 몇몇 대표작과 — 예술을 향한 그들의 열정에 대한 — 단편적 일화만을 겨우 떠올릴 뿐이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혼을 불태웠으리란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 『살롱 드 경성』은 그런 그들의 삶과 작품을 살피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 제 안에서 꿈틀대는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갈망을 실현시키고자 분투했던 그들의 집념과 노고, 그 예술혼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술이 삶 그 자체였고, 그런 삶은 곧 예술이었..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 스가 아쓰코 | 뮤진트리 십삼 년간의 밀라노 생활을 회상하는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집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를 차례로 만나보면서 그녀가 그린 섬세한 기억의 풍경에 매료됐었다. 어쩌면 그 팔할은 소란한 가운데 고요를 이끄는 그녀만의 단아한 문체의 영향이기도 했으리라.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은 그녀의 밀라노 생활 중 남편 페피노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엮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가족을 향한 그녀의 시선이 머문 자리를 가만히 따르는 사이, 스가 아쓰코라는 한 존재에게 한층 친밀하게 가닿게 된다. 그녀 안의 따스함과 그 보다 더 깊숙이에 자리한 단단함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이국땅에서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차곡히.. 명인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전설적인 ‘불패의 명인’ 슈사이의 생애 마지막 대국 바둑이 지닌 구도적인 면모와 예술적 품격을 서정시처럼 그려 낸 걸작 ‘나’는 제21대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 명인의 생애 마지막 대국 관전기를 쓰기 위해 은퇴기를 참관한다. 그 길고도 지난한 승부 가운데, ‘나’의 시선은 줄곧 병환 중임에도 혼신의 힘을 쏟는 명인과 젊지만 실력 있는 신예 기사를 매섭게 좇고 있다. 그 안에서 바둑을 향한 “고매한 정신의 모습”(p.59)을 목도하는 한편 “승부에 대한 흥미뿐만 아니라 한 가지 예도에 대한 감동”(p.101)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것은 오로지 바둑을 위하여 온 생애를 걸어온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나아가 이룩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였으리라는 것도 깨닫는다.사실 바둑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 뱀과 물 | 배수아 | 문학동네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 아무것도 명확한 것은 없다. 시간도 공간도,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의 그 무엇도. 단지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지금 이 순간을 유영하고 있을 뿐. 배수아 작가의 『뱀과 물』에 엮인 7편 안에서 그렇게 나는 오직 이 순간만을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p.94)으로 지냈다. 거기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품으면서.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를 마주했다. 나는 그 아이를 나의 일부로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믿으면서. 그러니까 그 아이는 곧 나인 거라고, 그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제 그것이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그저 탈주하는 시공간.. 이전 1 2 3 4 ··· 7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