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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한강 | 창비 억울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오월의 노래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곳에서 무참히 희생된 영혼들을 떠올린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했고 그것이 무고한 일임을 알기에 군인들의 총구 앞에서도 기꺼이 제 목숨을 제쳐둔 채 양심을 지키고자 했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스러졌고, 남은 이들은 오랜 세월 앞에서 외려 선명해지는 오월의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p.135) 하는 처절한 목소리가 오월 목전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모든 이들을 기리며.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용서할..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복복서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된 삶이라는 사건 예측 불가하고 불공평하고 질서 없는 진짜 인생을 사유하다 “단 한 번의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 이외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온 생애에 걸쳐 불공평하다고 믿는다. 다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속한 일인 것이므로 그저 분투에 가까운 삶을 착실하게 살아갈 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치열함에 치여 정작 자기 자신을 모른다. 때때로 가족과 그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 대해서 알은 체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낭패감에 맞닥뜨린 경험 역시 심심찮게 있지 않은가. 김영하 작가의 산문 안에서 그런 삶의 얄궂은 속성을 마주한다. 더불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명하게 내가 살아온 삶이지만 그때의 나는 당..
봄밤의 모든 것 | 백수린 | 문학과지성사 얼어붙은 줄 알았던 시간 속으로 날아든 작은 기적 부드러운 흰빛으로 가득 찬 백수린의 새로운 계절   일상 안에 깃들었던 작은 기적의 순간을 뒤늦게 서야 깨달을 때가 있다. 그땐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알았다면 좀 더 소중히 대했을 것을…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덕에 티 없이 환하게 빛 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반대로 그 당시에는 알 것 같다고, 이제는 안다고 여겼지만 후일 돌이켜 봤을 때 전혀 그렇지 못했음을, 외려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을 마주하는 당혹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 안에서 오래도록 마음 쓰이던 일에 대하여 어렴풋하게 직감하면서도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을 때의 허망함과 애석함, 이후 무섭게 파고드는 삶의 무기력을 마주하기도 하는 순간을 떠올리게도 ..
매일 좋은 날 | 모리시타 노리코 | 알에이치코리아 다도의 복잡한 규칙 너머에서 찾은 삶의 단순한 진리   노리코가 다도를 마주하며 보낸 시간들 안에서 삶을 향한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다도는 그녀에게 차를 즐기는 예법인 동시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는 수양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얽매이게 하고 때로는 옭아매기도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도 된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 그 덕택으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자유”(p.254)를 만끽하게도 했다. 결국 안갯속처럼 뿌옇기만 했던 다도의 세계에서 어렴풋하게, 때로는 명징하게 다가오는 깨우침의 순간들이 지금의 그녀를 존재하게 한 것이리라. 이제 그녀는 그 감각들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무언가를 성실하..
스토너 | 존 윌리엄스 | 알에이치코리아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윌리엄 스토너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컬럼비아에 있는 한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영문학 개론을 수강하고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진로에 대한 고민과 고뇌 속에 문학의 길로 접어들어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된다. 그 사이 결혼하여 딸을 얻게 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한 여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삶을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딸에 대한 애정은 지극했으나, 결혼 생활 내내 아내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불륜을 저질렀다. 학교에서는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교수로서의 지위와 ..
무해한 산책 | 헤르만 헤세 | 지콜론북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의 여행 기록 안에서 그의 시선과 발길을 좇는다. 그 가운데 그가 원하고 바란, 그리하여 실행에 옮긴 ‘무해한 산책’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널리 알려진 볼거리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현재 마주한 대상들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온전하게 느끼고자 하는데 집중했다. 그것이 어느 날에는 대성당과 종탑 등의 건축물이기도 했고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기도 했으며, 어떤 때에는 한 정원의 연못을 헤엄치는 금붕어이거나 아름다운 석호, 그곳에 터전을 둔 이들이 다니는 골목과 같은 풍경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마치 시를 쓰고 글을 쓰듯 애정 어린 눈과 마음으로 그 대상들을 마주하고자 한 것이다. 더욱이 그 과정 안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내면에 천착할 수 있었고, ..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페터 한트케 | 민음사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가 초래한 극단적 범죄 무질서한 전개와 강박적인 말놀이로 그리는  소통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불안한 단면   “이전에 꽤 유명했던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p.9) 이후 호텔과 여인숙, 여관을 전전하며 지내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 역시 불안과 절망이 영역한 모양새다. 더욱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에는 쫓기는 신세까지 되어 어느 누구,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그리하여 자신이 놓인 세상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에 그는 우연히 도착한 운동장에서 펼쳐지고 있..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프로데 그뤼텐 | 다산책방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곧 사랑을 기억하는 일   피오르 해안가 마을에 살며 배로 사람들을 태워 나르던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안에서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그는 평생에 그래 왔던 것처럼 마지막 날에도 배를 몰아 승객들을 태우며 보통의 나날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그 하루는 매우 특별했다. 사고로 먼저 죽은 반려견 루나와 역시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마르타를 비롯하여 그간 그의 배에 신세를 졌던, 하지만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그가 모는 마지막 배의 승객으로 마주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 만남 가운데서 닐스 비크는 자연스레 기억을 더듬으며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그것은 곧 삶의 끝이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애를 제 마음속에 영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