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
#. 01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 막 읽고서, '사랑이라니, 선영아'라고 붙인 책 제목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어찌 보면,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광수가 내뱉은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어서 별스러울 것도 없으련만, 새삼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 왜일까. 아마도 선영을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 사랑을 떠들어 대는 광수와 진우의 모습에 더없이 잘 어울렸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적당히 진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경쾌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흐름까지도 내포한 제목이라니, 반할 수밖에.
#. 02
'사랑'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곧 소설가 김연수가 말하는 사랑론(論)일 수도 있겠다. 그 안에서 매우 공감하며 와닿았던 부분은 물론, 미처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일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부부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사랑해"라는 말에 대한 얘기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한 후에야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사랑해"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는 것. 이런 사랑과 관련한 통찰의 문장을 하나씩 읽어 나가는 재미가 적잖다.
#. 03
작가의 말을 보면, 사랑 따위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소연하듯 말한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외침으로 들린다. 그게 소설가 김연수가 '팬들을 위한 특별판 소설'이라는 자리를 빌려,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일 수도…….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 p.47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 삼차방정식 그래프를 그리는 일이나 주기율표를 작성하는 일은 곧 까먹겠지만, “사랑해”라고 말한 경험은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67, 68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당장 죽어도 좋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때 삶은 죽음을 뛰어넘는다. 삶이 죽음이라는 엄청난 장애물을 뛰어넘는 데 지렛대로 사용하는 게 바로 사랑이다. - p.106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네. 그 사실이 얼마나 아쉬운 것인지, 그러면서도 그게 또 얼마나 마음 편하게 하는 것인지,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광수는 뼈아프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나 어른이 된다지만, 어른들은 자라나 무엇이 될까? - p.119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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