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문학이 보여주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살의 메커니즘
그 속에서 자살 연구자가 발견한 치유의 실마리
부제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 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어쩌면 실례보다도 문학 속 등장인물을 통해 헤아리는 편이 이해의 깊이 측면에서 보다 우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자살에 대한 뉴스 기사 혹은 주변 소식에는 결정적으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내면 심리, 그 서사가 누락돼 있는 까닭이다. 반면 문학에는 그것을 스토리의 주요 골조로 할 만큼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감행에 나선 이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우리는 가닿을 수 있으리라. 그들이 정말로 입밖에 내고 싶었던 목소리에, 그 진심에.
1장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들에서는 자살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다사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루고, 2장 자살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질병들에서는 실비아 플래스의 『벨자』,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를 통해 각기 우울증, 양극성 장애, 자해로 인한 죽음과 이밖에 술과 약물에 중독된 문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최초의 자살예방센터 설립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에 따르면 ‘자살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결과였으며, 모든 자살자들은 자신의 핵심적인 가치가 좌절됨으로 인해 심하게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p.21)로 보고 있다. 즉,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가 훼손됨에 따른 극심한 마음의 고통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책망하기에 앞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분명 필요하다. 이는 그들의 선택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닌, 모든 질병에는 고통이 수반되듯 자살 역시 그러한 고통으로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인 동시에 구성원 모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할 모두의 공동 과제이기도 한 이유리라.
사실 어느 사회 건 자살을 터부시 하면서도, 실상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아이러니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살을 꿈꾸며 그것만이 자신을 지옥에서 구원할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을 수 있다. 한편 한쪽에서는 그런 마음을 품은 이들을 나약하다며 못마땅해 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더없이 잔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살의 행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무작정 금기시하고 비난하는 것에 앞서 한 번 더 그들을 깊이 이해해 보려는 자세가 우리 각자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 다수의 이해와 공감의 태도 안에서 비로소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을 끌어안을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테니. 앞서 언급한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는 자살한 이들을 둔 어머니에게 ‘제가 불을 밝히고 있겠습니다.’(p.30)라는 쪽지를 남긴 바 있다. 생각건대,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그것이 죽음 충동이든, 다른 어떤 광기나 고통이든 간에)을 풀어놓은 뒤,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어 삶의 다음 장으로 옮겨간 작가들이 괴테 말고도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가 말했듯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 같습니다. 그 자신 역시 베르테르 못지않게 자살에 가까이 갔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설을 썼으며, 그 소설을 씀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오래도록 살아갔다는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 p.75 「베르테르 효과와 전염되는 자살」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임민경 지음/들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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