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죽음이라는 엄혹한 인간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의지
194X년 알제리 해안에 면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창궐한 페스트를 중심축으로 한 연대기다. 붉은 피를 토하며 비틀대다가 죽어 가는 쥐 떼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정부 당국은 페스트를 선포한다. 연이어 도시 봉쇄를 명하는데,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는 물론 뜻하지 않게 헤어진 연인, 가족들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대혼란의 한복판에서 의사이자 서술자인 리유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방식으로 재앙에 맞서고자 한다.
페스트라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낯설지 않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2020년 3월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에 대응해 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리라.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카뮈의 『페스트』 속 인물들의 모습, 그들의 내외적 고뇌와 절망, 갈등과 화해의 과정은 물론 사회 전반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더욱이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희망의 의지가 그 안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은 마침내 페스트가 잠잠해지고, 군중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맺는다. 그러나 페스트균이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님을 리유는 알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 비록 균의 성질은 다르지만, -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 다시금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소설 속 그들이 그랬듯, 우리 역시 그것들의 종식을 위해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니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해 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 p.401
![]() |
페스트 - ![]()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
'별별책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절에 따라 산다 | 모리시타 노리코 | 티라미수 더북 (0) | 2020.04.25 |
---|---|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임민경 | 들녘 (0) | 2020.04.18 |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소미미디어 (0) | 2020.04.11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수지 홉킨스∙할리 베이트먼 | F(에프) (0) | 2020.04.04 |
조용한 비 | 미야시타 나츠 | 위즈덤하우스 (0) | 2020.03.21 |
징비록 | 류성룡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0) | 2020.03.14 |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 문학동네 (0) | 2020.03.07 |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0) | 2020.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