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 흩어지는 '마음'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가는 이야기
유년 시절, 내가 각별하게 아끼던 몇몇 것 중의 하나가 프리즘이었다. 때때로 서랍 속의 그것을 꺼내어 하늘을 향해, 정확히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 보이곤 했는데, 그 순간 여러 빛깔로 나를 기쁘게 하던 것이 바로 프리즘이었던 것이다. 파란 물체 주머니 안에서는 그저 투명한 삼각기둥에 불과했던 것이 빛과 만나는 순간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걸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 광경을 보면 볼수록 질리기는커녕 늘 새롭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생각하곤 했다. 제 혼자서 멋진 것도 좋지만, 서로가 존재함으로써 빛날 수 있다면 그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대단한 기적이고, 마법일 거라고. 나는 그것의 근사함에 대하여 늘 동경해 왔다.
소설 『프리즘』은 투명 삼각이 뿜어내는 서로 다른 빛깔만큼이나 사랑을 대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네 남녀가 등장한다. ‘너무 맑기만 해서, 너무 복잡해서, 너무 음침해서, 너무 상처가 많아서’(p.263,264) 현실의 그들과 쉬이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으면서 한동안 나는 그들과 나를 포함한, 인간 존재가 지니고 있는 그 ‘마음’들에 대하여 침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저마다 품고 있는 ‘맑고 복잡하며 음침하고 상처 많은’ 마음들에서 어느 하나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애초 그것들과 쉬이 친해지리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음을. 그저 우리는 그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을 부여잡고 부단히 나아가고자 애쓸 뿐. 그래서일까. 나는 외려 네 인물을 그러모아 감싸주고 싶었다. 결국 그 ‘맑고 복잡하고 음침하며 상처 많은’ 마음들을 향한 여정이 결국 나와 당신의 삶인 거라는 체념의 마음으로. 그러나 희망 역시 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더욱이 그것은 때때로 스스로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까지 하니, 유년 시절의 프리즘만큼이나 신통한 것이라고 나는 여태껏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새삼 그 마음들이 경이로워진다. 때로는 우리를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그것과 비례하게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차곡히 확장될 것이므로. 소설 속 네 남녀가 그것을 상기시켜 준다.
예진은 프리즘을 조심스레 집어들어 흰 벽에 대고 햇빛을 통과시켰다. 작은 조각이 뻗어내는 아름다운 빛깔. 길고 짧은 파장의 빛이 벽 위로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색깔은 분명하지만 색간의 경계는 흐릿한 부드러운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260, 261
프리즘 - 손원평 지음/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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