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과 마음을 관통하고 지나간 날실과 씨실의 흔적들
당신의 시간, 우리의 이야기
여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각기 처한 상황이나 배경 등이 전혀 달랐으니까. 하지만 점차 읽어나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여러 편에 걸쳐 등장하는 소위 없는 것 없이 잘 갖춰졌지만 어딘가 2% 부족한 신도시가 주는 공허한 이미지가 그랬고, 마주한 상황에 결정적인 문제는 없지만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던 이유리라. 그리고 한 발짝 뒷걸음친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 혹은 특유의 냉소 역시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마지막 글인 「금성녀」를 읽으면서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연결 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마침내 흩어져 있던 퍼즐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쳐 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널찍한 숲에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살피며 조금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으리라 여겨졌으므로.
… 천천히 집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마리는 뺨에 차가운 기색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종일 찌푸려 있더니 눈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해 겨울 서울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 기록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숱한 비밀들이 밝혀졌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별도 있을 것이다. - p.225 「금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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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 은희경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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