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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내달린다
그리고 문득 눈앞을 가리는 아득한 실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속도감에 대한 배반을 극대화하는 데에, 모자람 없는 절대적 장치였단 생각이 든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p.145
70세 노인 김병수는 전직 수의사이자, 연쇄살인범이다. 그리고 그는 은희를 구하고자 마지막 살인을 시도하려 하고, 나 또한 차츰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김병수도 나도 혼란에 빠졌다.
노트를 들추거나 녹음된 내용을 들어보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 기록되어 있곤 한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 기억에 없는 나 자신의 행위, 생각, 말을 읽는 기분이 묘하다. 젊어서 읽은 러시아 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 것만 같다. 배경도 익숙하고 등장인물도 낯이 익다. 그런데 새롭다.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 p.99
물론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백퍼센트 신뢰할 순 없다고 스치듯 생각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 의심마저 깡그리 잊은 채 은희를 죽이려고 하는 박주태를, 그런 박주태를 죽이려고 하는 김병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감정 폭이 잔잔한 이야기들을 주로 읽어서 그런지 굉장히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 |
살인자의 기억법 - ![]()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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