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소년 모모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건물의 칠층. 이곳은 아랍인 소년 모모가 사는 곳이다. 그리고 창녀의 아이들을 키워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로자 아줌마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모모 역시 어느 창녀의 자식인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수용됐었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여전히 지난날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살아 돌아온 뒤에도 몸을 팔아먹고 살았는데, 나이 탓에 매력을 잃어가자 창녀의 자식들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몸이 극대로 쇠약해져 매일같이 칠층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모모는 생각한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열 살(실은 열네 살)의 모모는 태연하게 거짓부렁도 할 줄 알고, 때론 도둑질도 일삼는다. 거침없는 말본새와 위악적인 행동거지 역시 제 나이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 그야말로 영악한 아이인 것이다. 마치 그것만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버텨 살아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꽁꽁 싸매 뒀던 여린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한다. 로자 아줌마가 여태껏 돈을 받는 대가로 자신을 돌봐온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모모는 이를 두고 '내 인생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울며 방을 뛰쳐나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묻는다.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냐고.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이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p. 12
모모를 극도의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잃어가는 로자 아줌마다. 그리고 머지않아 홀로 남겨질 자신을 떠올리며 불안해 하는 것이다. 어른인 척 호기롭게 때론 냉소적인 말도 곧잘 내뱉던 모모가 실은 영락없는 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영악함을 가장한 지극히 자기 방어적인 여린 소년을 마주하는 것이 애처롭고, 또 그런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마치 하밀 할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모모를 바라봤던 것처럼.
"모하메드야, 너는 감수성이 무척 예민한 아이구나.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뭔가 좀 다르게 보이지."
- p.50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나이, 성별, 인종까지도 뭐하나 들어맞지 않는 부조화의 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는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상심해 있는 모모에게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몇 번이고 맹세하는 한 편, 모모 역시 불현듯 찾아온 아버지를 외면하고는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로자 아줌마를 마지막까지 보살핀다. 그렇게 그들은 어려운 환경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로자 아줌마뿐만 아니라, 모모 곁에 있는 이웃들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존재다. 그들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지만, 서로 보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몸소 실천하며 본보기가 되어주는 소중한 인연들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모모는 열다섯 살 무렵의 로자 아줌마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진 속에서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 소녀와 자기 옆에서 처참한 몰골로 있는 로자 아줌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인간 생의 양면성을 마주한다. 생이 그녀를 꽃피웠지만, 그녀를 파괴한 것 역시 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모모는 차츰 자기 앞에 놓인 생의 비밀을 알아가며 차츰 성숙해간다.
사랑해야 한다. - p. 311
어떠한 조건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 『자기 앞의 생』. 이는 모모를 통해 작가 에밀 아자르가 인간 생(生)에 대해 담고자 한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 생을 빛나게 하는 진리라는 것을 말이다.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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