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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걷는 듯 천천히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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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래서 영화를, 다큐멘터리를 만듭니다"

섬세한 시선으로 사람과 일상, 그리고 영화를 읽어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에세이집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게 됐다. 15년 전, 가족을 두고 떠났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세 자매(사치, 요시노, 치카)는 그곳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처음 마주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탓에 데면데면 지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관계지만, 세 자매는 이복동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한 집에서 네 자매가 되어 살아간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32610&imageNid=6491446

 

 

 

 

사실 이 영화를 유심히 보게 됐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속 배경지인 가마쿠라(鎌倉)에 있었다. 아름다운 쇼난 해안과 평행을 이루며 내달리는 에노덴의 운치 있는 모습은 가마쿠라에 들러본 사람이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풍광이기에 말이다. 그 덕에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도 그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램덩크 이후, 가마쿠라의 매력이 극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녹아든 영상물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단연 최고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모든 면에서 조화로웠다. 이곳에서 웃고 울며 일상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 모습 그대로 지낼 네 자매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도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그려졌기에 말이다. 물론 이는 고레에다 감독의 빛나는 연출의 공일 것이다.

 

 

내 경우 목표로 하는 한 가지만은 명쾌하다.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만드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120, 12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는 영화를 향한 그의 신념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므로 평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눈여겨본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소소한 추억,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마주하는 삶을 향한 태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일상인으로서의 인간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한 권이라고 생각한다.

 

 

멈춰 서서 발밑을 파내려가기 전의 조금 더 사소하고, 조금 더 부드러운 것. 물 밑바닥에 조용히 침전된 것을 작품이라 부른다면, 아직 그 이전의, 물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흙 알갱이와 같은 것. 이 에세이집은 그런 흙 알갱이의 모음이다. 아직 작은 알갱이 그 하나하나는 분명 몇 년이 지난 후, 다음, 그다음 영화의 싹이, 뿌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 p.10

 

 

 

 

 

걷는 듯 천천히 - 6점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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