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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두 손 들지 마라,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일 수도 있다."
홀로 세 살 난 아들, 뤼도빅을 키우는 줄리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다. 자신의 꿈을 중단한 채, 생계를 위해 슈퍼 계산원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던 그녀 앞에 불현듯 늙은 신사 폴이 나타난다. 이제 막 부인과 갈라선 후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하는, 그러나 현실은 혼자서는 장보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인물이다. 어쨌든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폴의 식사 제안에 줄리가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응하게 되면서, 함께 브르타뉴로 휴가를 떠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의사이자 폴의 아들인 제롬이 동행하게 되는데, 그 역시 우울증을 앓던 아내의 자살로 심신이 피폐한 상태다.
이렇게 갑작스럽고도 낯선 조합이 모여 떠난 여행은 어색하고 불편할 따름이지만,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지내면서 작가의 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서로의 삶에 연고를 발라 주는' 관계가 되어 간다. 찌들었던 일상에서 벗어나 아들과 함께 브르타뉴의 아름다운 바다를 만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줄리, 아내 이렌느를 떠나보내고 애써 억눌러 왔던 감정을 터뜨리는 제롬,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 이 둘의 존재만으로도 한없이 기쁜 폴까지.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제롬과 뤼도빅이 크게 다치는데, 제롬은 후유증을 남기긴 했지만 회복하는 반면, 줄리의 아들 뤼도빅은 혼수상태 끝에 숨을 거두고 만다.
"모든 상처는 아물어요, 그럭저럭 빠르게 그럭저럭 크게 흉 지지 않게. 하지만 피부가 딱딱해지죠. 흔적은 남지만 삶은 더욱 항해지는 거예요." - p.256
살아가면서 때때로 견디기 힘들 만큼 절망스러운 순간들에 맞닥뜨리곤 한다. 물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서히 무뎌져 갈 것을 알지만, 고통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일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극도의 괴로움을 동반한 채, 평온했던 일상을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이렌느처럼 인생길을 스스로 접는 이들도 생겨나곤 하는데, 이 역시 낯선 일만은 아닌 세상이다.
그때, 혹은 그런 시기에 우리는 어떤식으로 그 시련을 이겨냈던가. 기억을 더듦거리며 떠올려봤다. 각자 조금씩 그 과정과 방식, 치유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결국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면서 조금씩 사소한 것에서 부터 삶의 희망을 찾는 것!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줄리 곁에는 폴과 제롬, 그리고 절친한 친구인 마농 뿐만 아니라 로맹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비록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말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씩 극복해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우리가 그걸 아름답게 보거나 덜 아름답게 보는 거예요. 완벽한 행복에 도달하려 하지 말고, 삶의 작은 것들에 만족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 것들이 조금씩 모이다 보면 결국 목표에 가까워지니까." - p.270
"삶은 바다와 같아요. 파도가 해안에 밀려오면 물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가 파도가 물러가면 다시 고요해지죠. 이 두 움직임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반복해요. 하나는 빠르고 거칠며,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부드럽죠. 물살이 조용한 곳으로 몰래 떠나버리고 싶다고요? 그래서 완전히 잊히고 싶다고요? 하지만 거기도 머잖아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예요. 이후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올 거고요, 계속해서, 영원히. 삶이란 그런 거니까요……. 두 가지 움직임이 교차하고 규칙적으로 변화해요.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면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가 어느새 잦아들고 잔잔하게 찰랑거리죠. 잔잔해도 어쨌든 찰랑거리긴 해요. 바닷가는 절대 고요할 수가 없어요. 절대. 삶도 마찬가지죠. 당신이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삶이. 이 모든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모래알들이 있고 좀 더 위쪽에 있어서 젖지 않고 멀쩡한 모래알들도 있지요. 무얼 부러워해야 할까요? 생각해봐요. 뽀송뽀송하고 반짝이는 위쪽 모래알로는 모래성을 지을 수 없어요. 파도에 시달린 모래로 지어야죠, 이 모래가 점성이 좋으니까요. 당신은 인생의 모래성을 다시 지을 수 있을 거예요. 폭풍우에 단련됐으니까요. 그 모래성은 당신을 닮은 모래, 인생의 풍랑을 겪은 모래로 지어야겠죠. 그래야 단단할 테니까." - p.361, 362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우리는 삶 속에서 살아야 했다. 로맹이 옳았다. 우리는 헤쳐나간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삶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고 우리는 강물의 흐름을 따라 떠다니는 작은 나뭇조각들이다. 우리 모두는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 뒤집히고 충돌하고 순간순간 가라앉기도 하지만 여전히 강물에 떠 있다. 그러다가 더러 잔가지들이 강물 구석으로 회오리를 그리며 모여들어 함께 숨을 돌린다. 룰루의 죽음은 댐이 무너진 것과 같았다. 물이 넘쳐흘러 죄다 휩쓸어버렸지만 우리는 익사하지 않았다. 서로서로 손을 붙잡아주었기에,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붙들어주었기에. 이런 풍랑을 극복하고 났을 때 더욱 강해진 기분을 느낀다. 또한 더욱 여려진 기분도 든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아프지만, 견딘다. 견뎌낸다. 또 다른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전까지. 그것이 바로 인생이니까. 진짜 삶이니까. - p.398, 399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 아녜스 르디그 지음, 장소미 옮김/푸른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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