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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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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백영옥이 우리 곁에 다시 가져온
추억 속 빨강머리 앤의 웃음, 실수, 사랑과 희망의 말들!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 앤 셜리

 

첫 만남이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조차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앤. 하지만 앤이 내 안에서 한층 특별한 존재가 되어 지금껏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계기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몹시 따랐던 한 선생님 덕분이다. 그분께선 사람 마음속에 있는 사랑, 희망, 기쁨, 미움, 시기심, 질투 등의 감정들에 솔직한 명랑소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앤처럼 말이야'라고 덧붙이시면서. 그때부터 나는 앤과 친구가 되고 싶어졌고, 멋대로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의 저자 백영옥 만큼이나, 나에게도 앤은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품이 온세계처럼 느껴지던 나에게 고아인 앤은 동정의 대상이었고, 남자아이를 원했던 매튜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서 조차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부분에선 앤 이상으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 앤은 결정적으로 나란 아이와는 달랐고, 그것이 그 시절의 나에겐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마도 앤의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 실로 순수하며 따뜻한 - 시선과 희망의 생각들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내 눈에 비친 앤은 여러모로 나와는 다른, 그래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 아이였다. 조금은 유별나 보이기까지 하는 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던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걸 보면, 단단히 매료됐던 것이 분명하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앤의 존재 마저도 추억의 한 켠으로 자리해버린 어느 무렵, 서점에서 우연히 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새로이 발간된 100주년 공식 기념판을 마주했다. 소중했던 친구와 재회한 듯 반가웠고, 세월에 휩쓸려 잠시 벌어졌던 앤과의 거리도 다시금 좁혀졌다. 그 무렵의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만만치 않은 상황 안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긍정할 수 있는 앤의 특별한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기에. 그야말로… 앤을 때마침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마주했다. 둘만 알던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그것도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아주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더해진 기분이다. 훌쩍 어른이 되어 앤이 했던 말들을 되뇌는 일이, 그리고 마릴라와 매튜를 다시 만나는 일이 새삼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앤은 정말이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였고, 어린 마음에 어째서 그토록 친구가 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마저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다정다감하지 못하고 매정하게만 보였던 마릴라 아줌마에 대한 편견 같은 거다. 여하튼 이렇게 추억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그 위에 다시금 새로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고 앤과의 우정이 이어지길 빌며.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앤의 그 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의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 p.22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아주 특별한 능력

 

머리카락이 초록색이 되고 나서야, 앤은 자신의 빨강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조금씩 너그럽고 상냥하게 키운다고 말이다.    - p.27, 28 우연을 기다리는 힘

 

내게 있어 여행이란 끝없이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내게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 앤에게 마릴라와 매튜가 있었던 것처럼.    - p.141 여행이란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

 

이것만은 분명하다. 살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 p. 170 꿈을 이룬다는 것의 진짜 의미

 

그러나 앤이 마음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는 건 그녀에게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조다. 앤은 이제 침묵이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대화의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란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에서 말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항상 제삼자가 듣기 마련이며, 그 제삼자가 바로 침묵이다.”라는 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 p.262 침묵의 기술

 

나비는 애벌레였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찬란한 날개를 펴며 나비가 된다. 그렇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다. 젊음이 인생의 처음에 놓여 있는 건 아무래도 인간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아닐까. 톨스토이의 말이 맞다. 내가 신이라면 나 역시 청춘을 인생의 맨 마지막에 놓겠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토록 푸릇한 청춘이 놓여 있다면,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 p.319 젊음을 삶의 맨 마지막에 놓을 수 있다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8점
백영옥 지음/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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