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낸 모든 시간을 긍정하는 다정한 문장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p.293)는 작가의 말이 묵직하게 와닿는다.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엮인 아홉 편은 결국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놓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저마다의 분투, 그 과정 안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살면서 마주하는 어떤 감정들은 때때로 우리의 지난날을 곱씹게 한다. 대개는 소외돼 쓸쓸하고 못 견디게 지독하면서도 성가신, 그로 인해 얼마간은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기 마저 한 아프고 쓰린 기억들이다. 나는 그런 지리멸렬한 삶의 속성이 지니는 환멸을 뒤로하고서도 나아갈 수 있는 억척스러움이 자기 안에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살아간다’는 일의 관건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렇기에 이따금 내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가늠해보고자 했는데, 이는 곧 삶에 대한 의지, 살아갈 의욕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삶에서 파생된 모든 가치를 재차 떠올리고 되새기려는 하나의 정형화된 루틴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무용해지는 순간이 삶에는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리라. 그야말로 불가항력적 상황인 셈인데, 그때의 나는 뭐에 홀린 듯 멍하게 있다가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리는 것이 대개였다. 그러고는 길을 잃었다는 자괴감에 머릿속이 아득해 지곤 했다. 그 어떤 나름의 대비도 완전할 수 없다는 현실 자각의 전형적 순간인데, 그런 상황들을 파도에 몸을 맡기 듯 대처해 나가는 요령을 차츰 터득해 가는 과정 자체에 삶 다운 삶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나아가 삶의 모든 순간들을 끌어안아 입때껏 걸어왔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데에 새삼스러운 수고와 경이를 느낀다.
「체스의 모든 것」을 시작으로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표제작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등을 비롯한 아홉 편은 삶의 모든 찰나, 그 안에서도 비애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한층 빛을 발할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이 세계에서 온전하게 나 자신을 붙들고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되도록 오래 사수한다는 것 뒤에 숨은 우리 각자의 노고, 그 삶에 대하여 헤아려 보게 한다.
누군가가 남긴 유산으로 하는 결혼이란 지독한 블랙코미디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순간들을 맞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떤 불행이 올 것인가 살피지도 않았고 아무 나쁜 일이 없으리라 낙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생이라는 것이 우리를 위한 최소한의 자비 같은 것을 남겨놓아 비정하게 말하자면 숙부가 죽고 우리가 다시 만나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 - p.220 「모리와 무라」
오직 한 사람의 차지 - 김금희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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