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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 백수린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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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평온했던 일상을 한 순간 깨는 일을 이따금 마주한다.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일인 경우도 더러는 있지만, 오직 자신만이 감지한 몹시 섬세하고도 여린 감정의 소용돌이일 때가 대개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현듯 밀려온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음 어딘가에 쌓아 두어 잠재돼 있던 것이 어떤 일이나 상황을 계기로 불쑥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기는 하겠다. 그리고 이 같은 감정의 여파는 스치듯 이내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동안의 자신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하고도 집요하게 따라 붙기도 한다. 동시에 스스로 조차 그런 감정에 대하여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도 미묘한 경우도 있는데, 각기 방식은 다르더라도 우리는 결국 매순간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대상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함으로써 균열이 일었던 일상을 메꿔 나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마치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처럼 속절없기도 한데, 이내 또다른 파도가 밀려와 이 모든 것을 다시금 쓸고 가리라는 믿음이 그 찰나의 시간을 버티게 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런데 파도와 파도 사이, 떠밀려온 조개 껍데기를 줍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 않을까.

백수린의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에 실린 짧은 소설은 조개 껍데기를 줍던 그때, 우리가 마주했던 어떤 찰나의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내버려 두면 휩쓸려 사라지기도 하고 일부는 더 깊이 묻혀버릴 테지만 애써 줍는 행위를 통해 한번 더 들여다 볼 기회를 갖게 되던 그때 말이다. 그런 수고가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감정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무엇보다 파도의 힘 대신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그것을 저 멀리 던져버릴 수도, 손에 쥘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고 마는 그때……. 

 

수록된 열 세편은 차례로 「어느 멋진 날」, 「우리, 키스할까?」, 「완벽한 휴가」, 「봄날의 동물원」,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어떤 끝」, 「비포 선라이즈」, 「언제나 해피엔딩」, 「여행의 시작」, 「오직 눈 감을 때」, 「참담한 빛」, 「아무 일도 없는 밤」 이다.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했다.    - p.155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 10점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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