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내미는 손에 관한 이야기
중학교 선생인 엘렌은 유독 그늘이 보이는 한 학생(테오)이 마음에 걸려 나름의 애를 써보지만 녹록지 않다. 이혼한 부모를 둔 테오는 양 쪽을 오가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가는 처지로 친구 마티스와 마시는 술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마티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주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친구인 테오를 모르는 체하지 못한다. 마티스의 엄마인 세실은 아들과 어울리는 테오가 탐탁지 않은 한편 남편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무렵부터 혼잣말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들 네 인물에게는 어린 시절 받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물론 열두 살의 테오와 마티스에게는 당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미 어른이 된 엘렌과 세실 역시 그것을 과거의 일로만 접어 두기에는 그들 삶에 드리워진 그늘은 짙어 보인다. 그들이 현재까지도 과거의 영향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동시에 이는 곧 유년의 상처가 가져온 삶의 그늘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각자가 맞닥뜨린 그늘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것인 걸까. 분명 그렇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그것을 밀어 낼 힘은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 걸까. 소설 『충실한 마음』은 그 지점에 대하여 골몰하게 하는 ‘아주 짧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소설’(p.5)이다. 저자는 이 소설의 탄생에 대하여 “언제부터인지 저는 절박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충실함을 고민해야 하는 여러 인물이 서로 얽혀 있는 아주 짧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소설을 생각해왔습니다.”(p.5) 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구상 끝에 탄생한 네 명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들, 나아가 우리 각자의 삶에 깃든 충실함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있다.
과연 나는 충실함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때때로 그것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며 놓지 말아야 할 것, 간직해 나가야만 하는 것, 그 하나만은 확실해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여기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변하는 걸까? 언젠가 스스로 드러낼지 모를, 이름 붙이기 힘든 무언가를 다들 숨기고 있는 걸까? 열을 가하면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은현잉크로 쓴 불결하고 추잡한 글처럼, 다들 자신 안에 몇 년 동안이나 거짓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조용한 악마를 감추고 있는 걸까? - p.131
충실한 마음 -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레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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