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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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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출간 35주년 기념 완전판
평행선을 그리던 두 이야기가 맞닿는 충격적인 결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형식 안에서 내심 어떤 접점을 발견하고자 내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안달할 일이 아니었다. 구태여 그리하지 않아도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적 두 이야기로 스미는 까닭에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가닿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즉, 두 세계가 서로를 개의치 않고 나아가는 듯 보여도 결국은 한 가지, 그곳이 어디든 간에 나란 사람과 그 존재가 담고 있는 진심, 동시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까지도 감내할 수 있는 의지 혹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 모아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을 둘러싼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그렇다. 때때로 우리는 삶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 말하자면 휘말렸다는 표현이 보다 적확한 -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 반면,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와 결단을 통해서만이 성립할 수 있는 경우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까닭이다. 다만 양단간 중요한 사실은 어떤 세계에 있든, 심지어 그곳의 막다른 길에 서 있더라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 안에서 제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자 골몰하고 분투해야만 한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는 깊은 잠에 몸을 맡기면서도 자신의 비틀린 인생을 끝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음을 되뇌었고, 세계의 끝의 ‘나’는 그림자와의 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낸 세계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자 하는 것으로 저마다 나름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지 않은 바 있다. 이 같은 하루키만의 독특한 시선과 통찰, 상상 안에서 구현된 판타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 양단의 세계는 절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하루키 자신만의 본격적인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쉬이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 삶을 향한 주체적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에 보다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나는 내 인생을 비틀린 채로 내버려 두고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걸 마지막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함을 잃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를 근원부터 뒤흔드는 높고 큰 너울이었다. 그 너울은 끝없이 출렁거렸다.    - p.772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내게는 책임이 있어.” 나는 말했다. “나는 내 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세계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버릴 수는 없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고, 너와 헤어지는 것도 괴로워. 하지만 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이곳은 나 자신의 세계야. 벽은 나 자신을 둘러싸는 벽이고, 강은 나 자신 속을 흐르는 강이고, 연기는 나 자신을 태우는 연기야.”    - p.787 「세계의 끝」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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