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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쓰련다. 찬란했다고.”
시집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찬란’이라는 두 글자 단어가 계속적으로 나를 흔들었다. 그것에 스민 옅은 슬픔 탓이었는데, 여태껏 내가 알아 온 것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 까닭이기도 했다. 온통 환하게 비추어 그야말로 눈이 부시게 밝은 아름다움을 수놓으리라는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슬픔과는 도통 어울릴 법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진정으로 살고자 애쓰는 이들만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어떤 감정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리하여 살아 있다는 것, 그로 인한 경이는 –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든 -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한 것이라고. 살아 숨 쉬고 있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모든 필연적 순간들이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의심의 여지없는 찬란인 것이라고. 그러므로 내 앞의 어둠에 눈이 멀어 저 멀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흘러 보내는 나날의 어리석음이 불현듯 나를 깨웠던 것이라고……. 새삼 시인의 깊은 마음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불이 지나갔다 보름을 아팠으니 보름은 더 아플 것이다 이 진공을 붙들고 악의적으로 나는 나를 조금 더 아프게 할 것이며 이 세상의 심판을 찬미할 것이다 - p.111 「마침내 그곳에서 눈이 멀게 된다면」 중에서 |
찬란 - 이병률 지음/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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