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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지만 빛나던 시절
청춘, 예술 그리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문득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p.21)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말하자면 상실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제 안의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고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기도 했다. 또한 일순 벌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났음을 후일 자각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사라진 것들을 곱씹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상실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때때로 깊은 슬픔과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 일말의 후회와 자책, 아쉬움을 담고 있기는 했으나 —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희석됐다. 다만 그 가운데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애써 지난날의 무언가를 돌이켜 보려 한다고 해도 이미 저만치 달아나 빛바랜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시절의 반짝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씁쓸한 진실이다. 그저 지나간 자리만이 남아 있을 뿐.
앤드루 포터의 두 번째 소설집 『사라진 것들』에 엮인 열다섯 편은 그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잃어버렸음에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어떤 삶에 대하여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 p.127 「라인벡」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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