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
그 만남을 통해 전하는 삶의 이야기
오늘 오전 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란 제목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전작은 물론 작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냥 무작정 읽게 된 거였는데, 반절 정도 읽었을 때쯤이었나, 문득 '이게 소설이었던가??'라는 의문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읽던 걸 멈추고, 책 표지를 다시 살폈다. 책 제목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 그랬다. 책을 읽기에 앞서, 분명하게 눈으로 읽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적혀 있던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적혀있던 것 까지도.
첫 페이지를 넘기며 작가가 일상에서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그러나 결국은 위로 혹은 희망을 말하는 에세이겠거니, 멋대로 판단했었다. 그런데 어째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건 뭐지?? 싶었던 거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그 흐름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노골적이지 않은가. 과연 이 글에 얽힌 사람들의 동의는 제대로 구하고 쓴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혹여 허구라 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어째서 작가 자신의 신상을 그대로 베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지, 구태여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펴낸 의도는 무엇인지 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마구 솟구쳤다.
산문이라 함은 소설과 수필을 아우르는 말이니 '산문집'이란 것만으로는 그 진위를 알 턱이 없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이야기 산문집'이다. 자기 경험의 일이나 마음속 생각을 터놓은 걸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일에 관하여 사실인양 꾸밀 수 있는 것 역시 '이야기'라는 것의 정체인 것이다. 결국 겉표지로 되돌아갔던 일은 수확 없이 되려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느낌만 한껏 받고 말았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조금 우스웠다. 사실 이 책의 정체가 사실이든 허구이든 무슨 문제고 무슨 상관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궁금해지는 건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우선 접어두고, 내용을 살피면 대략 이렇다.
사십 초반에 이혼 경험이 있고 글을 쓰며 밥벌이 하는 자칭 방어적 인간인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의 이상형은 홑꺼풀에 단발인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주선으로 삼십 대 초반의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지루한 소송 끝에 이혼을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들은 첫 만남에도 결혼과 이혼을 주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그녀가 내세운 일방적인 조건 하에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는데….
그 과정 안에서 겪는 남자의 솔직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인 한 권이었다. 이렇게 솔직해도 될까 오히려 읽는 쪽이 당혹스러울 만큼. 또한 상대의 신상부터 파악하는 세간의 만남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해 나가는 이 둘의 관계 역시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평범 이상의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건 평소 무심하고 무의미했던 수많은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조차 -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유한하기에, 드문 일이기에 더더욱. - p.293 '의미' 중에서
마치 한 남자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뭐해요?' 라고 묻던 그녀의 메시지에 설레하는 그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지음/그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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