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한동안 기승이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적이면,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온다. 매 해 나는 그렇게 가을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계절이 가장 좋냐는 질문을 한다면 주저 없이 가을을 꼽으리라.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무덥지도 혹독하게 춥지도 않은 그 선선함이 주는 상쾌함을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다시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라면 어째서 봄일 수는 없는 거냐고. 오히려 온갖 생명력이 태동하는 파릇한 봄이 더 경이롭지 않느냐고. 확실히 일리가 있다. 더욱이 봄에는 어찌 됐든 새로이 출발할 수 있으리란 어떤 마법의 기운이 확실히 감도는 듯도 하니까. 그러나 그 신비에 가까운 힘이 나에겐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오곤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때로는 선명하고 반짝이는 것에 혹하기도 하지만, 조금 빛이 바랬더라도 편안하고 손때 묻은 것에서 느끼는 안도감을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어릴 적 수업 준비물 구입을 위해 드나들던 학교 앞 문방구 이름이 ‘새싹’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지금 생각해 봐도 의문일 정도로 일관되게 냉랭하셨다. 매일같이 시끌벅적하게 밀려드는 아이들에게 진이 다 빠지셨던 걸까. 아무튼 하얀 도화지 있냐, 고무 찰흙 있냐 묻는 것조차 진땀 날 정도로 쌀쌀맞으셨는데, 그 여파가 무의식 중에 봄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니까 애초에 선택지는 오직 가을만이 존재했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말이 되겠다.
내가 느끼는 가을은 이러하다. 적잖은 시간을 할애한 모든 것들이 무르익어 비로소 절정에 다다른 느낌. 그에 힘입어 충만해진 마음으로 떨어지는 단풍과 이미 떨어져 버린 낙엽 마저도 쓸쓸하기 보다는 그동안 수고했다고 오히려 나무들을 위로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샘솟는 계절. 그렇게 나는 늘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만 쉬어 갈게요』의 아기자기한 글과 그림 덕분에 잠시 쉴 수 있었다. 일상 안의 작은 쉼표 같았던 책!
계절과 계절 사이의 어디쯤 그 사이의 설렘이 좋다. 지난 계절의 아쉬움과 후련함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공존하는 그 사이
잠시만 쉬어 갈게요 - 보담 지음/더테이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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