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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리듬의 글쓰기
명료한 언어로 포착해낸 전 생애의 디테일
두 장으로 나뉜 이 소설의 첫 장은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출생의 순간을 묘사한다. 혹여 출산하는 동안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곧 태어날 자식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 남자(올라이)의 독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한 생명이 맞이하고 있는 생의 아침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장에서는 장성한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노년의 요한네스를 그린다. 아내와 절친했던 친구를 앞서 보내고, 이제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생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물어 가는 생의 저녁에 자연스레 비유될 수 있겠다. 한편 이 이야기는 마침표 없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문장, 그 사이에 자리한 쉼표가 부여하는 여백 안에서 한층 유기적이고도 극대화되고 있는 점이 단연 돋보인다. 이를테면 그 안에서 형성된 독특한 리듬이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생(生)의 시작과 끝, 그 끝없는 순환이 지니는 삶의 속성을 한층 설득력 있게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아침 그리고 저녁으로 이어진 두 장의 이야기 안에서 요한네스는 태어나고 또 죽었지만, 이 세계는 어김없이 새 날의 아침이 밝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은 스러지고 또 다른 어떤 생명은 태동할 것 역시 자명하다.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거대한 우주의 순환, 그 영원의 신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매혹적인 소설로 기억되리라.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 p.15, 16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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