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되뇌어 본다. 레몽에게 휘둘렀던 칼을 재차 꺼내 든 아랍인의 잘못이었을까, 그때에 칼날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잘못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 비록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 상대가 꺼낸 칼날 위 반사된 빛을 어쩌지 못하고 권총을 꺼낸 뫼르소의 잘못이었을까. 이 일련의 상황은 재판장에서 피고인 측 증인대에 올랐던 셀레스트가 반복하여 말했듯, ‘하나의 불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 없는 아주 지독한 불행의 한 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뫼르소는 모든 자유를 박탈한 채, 사형에 처해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돼 버린 뫼르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외로운 길을 걷게 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발적인 살인이 그를 이 세계에서 영영 이방인으로 낙인찍히게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는 세속적 성공에는 무심한 존재이지 않았던가. 요컨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기 마련인 출세를 통한 부와 명예라는 사회적 성공이 자신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무관함’의 자각을 진작에 고백한 바 있다. 그러므로 사건과 무관하게 이미 내면적으로는 세간에 구애됨 없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것을 진작에 결심했으리라. 다만 우발적 사건이 그런 생각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을 뿐.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고도 결연하게 맞이하고 있는 그의 태도에 있다. 이는 지키고자 하는 진실이 가슴속에 선명히 자리하고 있기에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사실 돌이켜 보면, 사형을 선고받았던 재판장에서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재판관과 검사, 배심원들 심지어 그의 변호인 마저,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말에만 집중할 뿐 누구 하나 뫼르소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이는 없었던 것이다. 선고 후, 처형될 날만을 기다리는 그에게 구원을 자처하며 찾아온 사제 역시 다를 바는 없었다. 그리하여 뫼르소는 타인 아닌 자신이 좇는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비좁은 감방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뫼르소를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창살 너머 보이는 반짝이는 별을 헤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진실로 존재할 뿐이라고 부르짖지 않았을까. 머지않아 이 세계에서 사라질 자신의 운명도 잊은 채.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 p.147,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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