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멸의 고전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 p.11 「어쩌면 우연」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서 사람들은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왜 하필 그들인지 안타까워하기도, 삶의 허망함을 느끼며 죽음에 대해 침잠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회 주니퍼 수사 역시 그랬다. 더욱이 사고의 원인을 단순 우연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신의 의도로 여겨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사고 관련 조사에 착수했고 나름의 답을 도출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구심은 그를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했고, 때로는 그것을 핑계 삼아 상대방을 힘들고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 존재였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기에 과오를 뉘우치며 다시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소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필 그 순간,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그야말로 한순간 허망한 일에 휩쓸린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새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아가 삶의 의미는 물론 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것은 곧 이 삶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주피터 수사가 놓쳤을 수도 있다고 표현한 “샘 속에 숨겨진 더 깊은 샘”(p.19)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p.207 「어쩌면 신의 의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추락한 이들은 각기 제 삶에서 사랑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그들 마음속에 품었던 것 역시 사랑이었음을 기억해 둬야겠다.
- 저자
- Thornton Wilder
- 출판
- 클레이하우스
- 출판일
- 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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