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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시절과 기분 | 김봉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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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한국문학이 기다려온 새로운 사랑의 기분

 

 

 

우리는 저마다 열차에 올라있다. 같은 목적지를 약속한 두 사람이었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러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별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혼자였던 이는 뜻밖의 누군가와 마음이 통해 남은 여정을 동행하기도 하면서. 그렇기에 열차 안 좌석의 주인은 영원하지 않다. 내 자리였지만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도, 누군가의 자리를 중도에 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수한 반복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혼재 안에서 열차만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끝없이 끝없이……. 그 지난한 여정 안에서 우리는 대개 사랑을 한다. 그러므로 훗날 그 시절의 기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한때 사랑했던 대상을 상기하는 일과도 적이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는 사이 우리는 아주 조금씩 현재의 자신에 닮아 있게 되고, 영원히 눈부실 것만 같았던 인연과의 기억이 어느새 색 바래져 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시절 마주했던 기분의 결만은 신기하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음 한 켠에.

김봉곤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에 실린 글은 그 마음 한구석에 고이 자리하고 있는 이야기들인 것만 같다. 일부러 떨치려고도, 구태여 붙잡고 있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온전하게 품어졌던 그 시절의 그 기분들 말이다. 다만 이 열차가 – 비록 목적지는커녕, 열차에 올라 있다는 사실 외에는 그 무엇도 불확실할지언정 – 어디로든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 어떤 자잘한 것에도 개의치 않으리라는 무신경함으로, 넘치는 패기와 다소의 무모함으로. 그것은 오늘이 아닌, 지난날의 자신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순수, 생생한 활기이고 대담한 용기이기도 했으리라. 한편 그 시절, 그 기분의 한복판에 있었던 지난날의 자신을 향한 애틋함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오늘의 나를 에워싸는 아쉬움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다부진 각오이기도 할진대, 그로 인해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훗날의 자신과의 만남을 고대하는 이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따금 지난날의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에 다다르곤 한다. 이는 비로소 이전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 만큼의 심적 여력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고, 나아가 앞으로의 날들 역시 잘 헤쳐가겠다는 의지의 순간이기도 하지 않을까. 김봉곤의 소설집 속 이야기들은 꼭 그런 나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새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지난날을,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엔 내가 맞았지? 울면서 웃는 해준의 얼굴을 보았고, 사직구장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야구를 보는 혜인과 내가 있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가능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 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美) 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p.47, 48 「시절과 기분」

 

 

 

 

 

시절과 기분 - 8점
김봉곤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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