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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처럼 포근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 에세이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 거듭된 과정 안에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단연코 사랑의 힘이었으리라. 요시모토 바나나가 글 쓰고 수피 탕이 그린 그림 안에서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날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고 밥을 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그때 자주 해주셨던 진한 된장국의 맛으로 남아 있다. 후일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도마 앞에 서면 그 시절 아빠가 알려주었던 무 써는 방법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빠를 추억한다. 한편 자신이 온 세상인 것처럼 꼭 붙어 있던 아이가 훌쩍 성장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대견해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타피오카 음료를 지금까지도 즐겨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머지않아 맛있게 쭉쭉 빨아대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사랑은 변함없이 여기 있어도, 형태는 달라지”(p.66)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런 까닭에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안에서도 사랑만은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난날을 애틋한 마음으로 감싸 안으며 그래서 더 소중한 오늘을 감사히 여기겠다고 다짐해본다.
네가 연인과 먹는 밥이, 언젠가 ‘가족’이 먹는 밥이 되기를. 그리고 그 축적이 둘도 없는 지층이 되어 너의 인생을 빚어 가기를. 가능하면 그 인생이 행복하기를. 촛불을 밝히고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늘 똑같은 사람들과 먹는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순간의 행복은, 인생의 수많은 행복 중에서도 상당히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행복도,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랑이 너의 세계에 있기를. - p.72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수피 탕 그림, 김난주 옮김/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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